<창세기 1장 - 창조의 개요>
- 하나님은 무(無)에서부터 창조하셨다. 즉, 세상이 창조되어 나은 어떤 선재(先在)적인 물질이란 전혀 없었다. 자연계의 일상적인 능력으로는 무로부터 어떤 사물을 창조할 수가 없다. 어떤 기술공이라 할지라도 일할 일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서는 무에서 사물을 창조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의 방식은 창조를 위해 유일한 방법이다. 따라서 모든 능력의 고귀함은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한다.
-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시며 활동의 원천이시기도 하다. 죽은 물질은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한다면 영원히 죽은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을 반드시 살리시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게 하여 준다. 태초에 혼돈과 공허와 흑암 가운데서 이러한 세계를 만들어 낸 능력은 마지막 때에 우리의 누추한 몸을, 흑암 자체와 같은 흑암의 땅과 그리고 아무 구별이 없는 곳과 같은(욥 10:20) 무덤으로부터 이끌어내어 영광스러운 몸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보이는 존재들 가운데서 가장 최초의 것은 빛이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께서 빛을 가지고 보는 가운데 활동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흑암이나 광명이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빛을 가지고 우리로 하여금 그가 활동하신 바와 그것들 속에 나타난 그의 영광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 하나님은 빛과 어두움을 분리하셨다. 왜냐하면 빛과 어두움이 서로 사귈 수 없기 때문이다(고후 6:14). 그리고 서로 규칙적으로 교대하게 하셨다. 어두움은 이제 비록 빛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기는 했어도 영원히 사라짐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오히려 빛과 교대하며 자기의 소임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어두움은 어두움대로 소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는 평화와 환난, 기쁨과 슬픔 같은 성쇠를 모두 기대하도록 가르치기 위한 것이며, 또 그 하나를 다른 것과 대조하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빛과 어두움에 조화시키듯 그 양자에게 모두 조화시키게 하며, 그 양자를 모두 받아들이게 하고, 또 양자를 모두 잘 이용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 인간은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서 제일 마지막에 지음 받았다. 그것은 아마 어떤 방법으로든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도왔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그것은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가 네가 어디 있었느냐?”(욥 38:4)는 물음 앞에 언제나 겸손하게 하고자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가장 나중에 창조되었다는 것은 영광스럽고도 은혜로운 것이다. 왜 영광스러운 것인가? 창조의 방법이 보다 불완전한 데서 보다 더 완전한 방법으로 진보하였기 때문이다. 왜 은혜로운가? 인간이 거할 궁전이 그를 맞이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준비가 된 후 비로소 그가 창조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 인간의 창조는 다른 피조물의 창조보다 더욱 뚜렷하고 직접적인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활동이시다. 그 설명도 어딘가 엄숙한 점이 있으며, 그 표현법도 다른 것들에 관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는 “빛이 있으라”, “궁창이 있으라”, 그리고 “땅과 물은 각기 그들의 생물을 내라”는 식의 말씀만을 내리셨다. 그런데 여기에 이르러서는 명령의 말씀이 협의하는 말씀으로 바뀌어져 이렇게 달라졌다. “우리가 인간을 만들자.” 먼저의 과정에서는 하나님께서 권위를 가지신 자처럼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는 사랑을 가지신 자로서 말씀하신다.
<창세기 2장 - 인간의 창조>
- 인간의 육체는 그 근원이 비천하지만 그 구조는 오묘하다. 그 소재는 비천한 것이었다. 인간은 진주나 다이아몬드 가루가 아니라 ‘땅의 티끌’로 지음을 받았다. 인간을 만들기에 도무지 합당한 재료와 같이 보이지 않지마는, 무(無)에서 세계를 창조하신 바로 그 무한한 능력이 인간을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드셨다. 인간은 흙에 속한 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흙에서 나왔고 흙과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기초는 땅에 있다(욥 4:19). 우리의 조직도 흙과 같은 것이며, 그것을 지을 때도 질그릇을 만들 때와 같이 하셨다(욥 10:9). 우리의 식물도 땅에서 나왔다(욥 28:5). 우리와 친분이 있는 것들도 흙과 함께 있다(욥 17:14). 우리의 조상들은 흙 속에 묻혔고, 우리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우리의 자랑이 어디 있는가?
- 그러나 우리를 지으신 이는 위대하시고 그 작품도 훌륭하다. 모든 존재와 능력의 위대한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셨다. 다른 피조물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창조 받고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그런데 인간에 대해서는 그가 “지음을 받았다”(formed)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 활동이 정확하고 정밀한 계획에 따라서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진흙이요,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기 때문이다(사 64:8). 사람의 몸은 기이하게 지으심을 받았다(시 139:15,16).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롬 12:1)로 드리고 성령의 전(고전 6:19)으로 드리자. 그리하면 이 낮은 몸이 잠시 후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과 같은 새로운 형체를 입게 될 것이다(빌 3:21).
-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는 인간, 즉 흙으로부터는 육체, 하늘의 생기로부터는 이성적인 불멸의 영혼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영육간의 행복을 위해서 마련하여 주신 것을 이 구절에서 볼 수 있다. 인간이 그들의 축복된 상태를 알고 그것을 간직할 수만 있었더라면, 인간을 지으신 분이 그 인간을 계속 행복하게 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감정의 세계와 관련된 인간의 육체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낙원에서 살게 하였고, 신령한 세계와 관련된 영혼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게 하여 주셨다.
- 은혜 시대의 계약 속에는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과 함께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는 경고가 포함되어 있는 것과 같이, 무죄 시대의 계약에도 생명나무를 통해서 인치시고 확증하신 “이것을 행하면 살리라”고 하신 약속만이 아니라 “범하면 죽으리라”는 경고가 다른 또 하나의 나무를 통해서 아담에게 동시에 주어졌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 두 나무를 통해서 아담에게 “선과 악, 축복과 저주” (신 30:19)를 함께 설정해 놓으셨다.
- 하나님께서 무죄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계명을 주셨고, 그때 그와 계약을 맺으셨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전능하신 창조자, 그리고 그의 풍성하신 은인으로서의 하나님만을 우리가 보아 왔다. 그런데 이제부터의 하나님은 통치자와 입법자로서 나타나신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에덴 동산에 두실 때 제멋대로 살도록 두신 것이 아니라, 통치하에 있게 하셨다.
- 창조주께서 인간을 돌봐 주시되 인간의 안락을 위해 아버지처럼 보살펴 주셨다(18절). 비록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금령을 내리심으로 그로 하여금 자기 자신이 하나의 예속되어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여 주셨지마는(16,17절) 그를 위해서 무엇이 좋겠는가 하는 것을 그 자신보다도 더 잘 아시고 계셨다. 그리하여 “그가 계속해서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나니” 라고 말씀 하셨고, 그를 위해 아내를 만들어주셨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요구를 완전히 아시고 그 모든 것을 넉넉히 채워 주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빌 4:19). 오직 그에게만 우리의 도움이 있으며, 우리의 도움은 모두 그로부터 온다.
- 그의 아내가 지음 받은 동안 아담을 잠들고 있었다. 그것은 아담이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다거나 그의 모사가 되었다거나”(사 40:13)할 만한 어떤 추측의 여지를 전혀 남겨놓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담은 자기의 배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직접 이 배필을 마련해 주시기 때문에 그의 아무 염려 없이 드러누워서 단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것은 그의 온갖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며, 그의 조물주의 뜻과 지혜에 자기의 모든 것을 기쁜 마음으로 맡긴 사람과 같은 것이었다. ‘여호와 이레’,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자를 우리에게 마련하여 주실 수 있도록 하여 드리자.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은혜 가운데 안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은혜 가운데서 역사하여 주시고 모든 선한 것들을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 여자는 “아담의 옆구리에 있는 갈빗대로 지음을 받았다.”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머리뼈로 만들지 않으셨고, 또 남자에게 짓밟히지 않도록 다리뼈로도 만들지 않으셨다. 그러나 동등한 위치에 서라고 하여 옆구리 부분에서 취하여 만들었으며, 보호함을 잘 받도록 하여 주기 위해 팔 밑에서 취했으며,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남자의 가슴과 가까운 곳에서부터 취하여 내셨다. 아담은 갈빗대 하나를 잃었다. 그러나 함이 빠진 것도 아니고 그 용모가 변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아무 흠이 없도록 그 살이 아물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잃은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배필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취하신 바를 어떤 모양으로든지 더 풍성하게 갚아 주신다.
<창세기 3장 - 시험과 타락>
- 하와를 속인 자는 확실히 마귀였다. 마귀와 사탄은 옛 뱀이다(계 12:9). 그리고 이는 악의에 찬 영인데 창조 때에 빛의 천사로 하나님의 보좌 바로 옆에서 수종들었으나 죄로 인하여 당초의 지위로부터 쫓겨나서 하나님의 명예와 권위에 반항하게 된 자이다. 이 때 수많은 천사들이 타락하였다. 그는 죄를 짓자 곧 사탄이 되었고, 반역자가 되자 곧 유혹자가 되었으며, 하나님과 그의 영광에 대해 분노하고 인간과 그들의 행복을 시기하였다. 사탄은 인간을 멸망시킬 수는 없어도 타락시킬 수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는 없었으나 시험할 수는 있었다(계 2:14). 그러므로 사탄이 꾸민 간계는 우리의 시조들이 범죄하도록 하는 것이었으며, 그들과 하나님과 사이를 갈라놓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사탄은 원래부터 살인자요 이간자였다. 사탄은 온 인류의 목덜미를 움켜 잡고 이를 한 손에 내려쳤다. 인류의 원수는 이처럼 극악한 자이다.
- 연약한 그릇과 같은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 마귀의 간계였다. 사람들은 하와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명을 받지 않고 그녀의 남편을 통해 간접적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처럼 쉽사리 그 계명에 불순종하도록 설복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귀는 그녀가 혼자 있을 때 이야기를 걸기 시작하는 술책을 세웠다. 그녀가 만일 남편 곁에만 있었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있기 때문에 심하게 유혹 당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또한, 마귀는 그녀가 금단의 나무 가까이 있는 틈을 탔다. 아마 그녀가 호기심에 이끌려서 그 나무 위에 있는 열매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금단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되는 자는 금단의 나무 가까이 오는 것도 안 되었던 것이다. 사탄은 아담을 유혹하기 위하여 먼저 하와를 유혹하였다.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통해서 유혹하고자 하는 것이 사탄의 술책이다.
- 외부에서부터 말하는 것을 가지고는 사람들을 무너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탄은 우리 자신들의 속이는 마음과 이론들을 가지고 우리 속에서부터 말한다. 이것은 매우 분간하기 곤란한 공격이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공격이다. 마귀는 하와로 하여금 금단의 열매를 따먹도록 설복하고자 시도하였다. 이 방법을 마귀는 계속 오늘날까지도 사용한다. 마귀는 죄가 되느냐, 혹은 아니냐고 물었다(1절). 마귀는 거기에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하였다(4절). 그는 오히려 많은 이득이 있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 주었다(5절). 이런 것들이 흔히 마귀가 사용하는 화술이다.
- 뱀과 이야기를 시작하였다는 것이 그녀의 약점이었다. 그녀는 뱀의 질문을 듣고 그에게는 아무런 선한 의도가 없다는 것을 즉시 깨닫고,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대답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호기심과 경이감에 가득찼던 그녀는 뱀이 말하는 것을 듣자. 그의 이야기에 끌려 들어가게 되었다. 당장 멸시와 증오심을 가지고 거절해 버려야 하는 유혹을 상대하는 것부터가 위험스러운 일이다. 적과 협상을 제기하는 수비대는 머지 않아 항복할 것이다. 해를 입지 않고자 하는 자는 해로운 길에서 멀리 떠나야 한다(잠 14:7; 19:27).
- 사탄은 그들이 앞으로 될 수 있는 상태보다 현재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현재의 상태에 대한 불만을 품게 하고자 하였다. 인간의 마음이 스스로 만족감을 가지지 못할 때 어떤 상태라도 그 상태 자체가 만족감을 가져다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불안한 마음을 가진 아담은 낙원 안에 있으면서도 낙원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으며, 천사들 중에도 그들의 자리를 떠난 자들도 있다(유 6). 또한, 사탄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도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다고 하는 야망을 품게 하고자 기도하였다. 사탄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놓은 자와 필적하리라고 하다가 스스로 멸망하였다(사 14:4). 따라서 사탄은 우리의 처음 조상들에게도 같은 욕심을 품게 함으로써 그들을 멸망하게 하고자 시도하였던 것이다.
- 이것은 우리의 처음 조상들에게 가장 위험한 올가미였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을 멀어지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며, 하나님께 충성하지 않도록 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귀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 대해 잘못된 생각을 품게 함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자기에게 이끌고 있으며, 죄를 통해서 이익을 얻는 바가 많다는 헛된 소망을 통해 사람들을 자기에게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귀와 대적하여 하나님을 가장 선하신 분이라고 믿어야 한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마귀에게 대항하면 그는 우리에게서 도망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