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2장 – 요시야>
- 요시야에 관하여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듣고 알게 된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다”(2절). 하나님의 은총의 절대성을 보라. 아버지는 죄 속에 살다가 멸망받았으나, 그 아들은 선택된 그릇이 되었다. 요시야는 악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났고 좋은 교육도 좋은 모범도 받지 않았으며, 그의 주위에 많은 사람이 그에게 아버지의 악한 발자취를 밟을 것을 조언했고, 거의 아무도 그에게 좋은 의견을 제시해 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그를 뛰어난 성도로 만드셨다. 즉 “그를 돌감람나무에서 베어내어 참감람나무에다가 접붙였도다”(롬 9:24)고 하겠다. 그 같은 은총이 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정직한 길로 행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잘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그의 선조들 중 어떤 왕들같이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았다. 양편에 모두 과오가 놓여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셨다. 즉 그는 미신이나 불경건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성전의 수리를 위하여 애썼다. 이 일은 그가 재위 18년에 했다(3절. 대하 34:8 과 비교하라). 역대하 34장 3절에 나타난 대로, 그는 훨씬 전부터 여호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개혁사업이 서서히 진행되거나 많은 반대에 부딪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가 완전히 실권을 장악하기까지는, 자기가 계획하고 원하는 사업을 실행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성전을 수리하는 중에 율법책이 발견되어 그것을 왕에게 가져갔다(8, 10절). 어떤 사람은, 이 책이 모세가 친히 가지고 있던 모세 오경의 원본이든가 아니면 친필 사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단지 퍽 오래되고 신빙성 있는 사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책은 모세의 명령에 의하여 지성소에 보관되었던 것일 공산이 크다(신 31:24 이하).
- 그 율법책이 그렇게 시기 적절한 때에 나타나서, 요시야가 시작한 축복된 개혁 사업을 지도해 주고, 촉진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또 요시야와 그의 백성들에게 좋은 것을 약속해 주는 징조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이 찬미 받고 존경받게 하고, 그들이 성경 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위해서 자리를 쌓아 두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하나의 징표이다. 민중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했다는 사실은 로마 교회에서 떠나온 저 종교개혁의 영광이요, 장점이요, 기쁨이었다. 그들이 율법책을 발견한 것은, 그들이 성전을 수리하고 선한 사업을 하려고 했을 때였다는 사실을 주목할 수 있다. 자기들의 지식에 따라서 의무를 이행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지식도 증가될 것이다. 자진 자는 더욱 가지게 될 것이다. 율법책은 성전 수리에 대한 그들의 모든 수고와 내용에 해당하는 풍성한 보상이었다. 제사장 힐기야는 그것을 발견하고 기뻐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그것을 왕에게로 가져갔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왕관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값진 보석이다. 왕 앞에서 율법서를 읽으라. 그러면,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리라. 그리고 만일 그 왕이 다윗과 같다면, 그는 그 율법책을 사랑하고 그리고 환영할 것이다. 그것이 그의 기쁨이요 조언자가 될 것이다.
<열왕기하 23장 – 요시야의 개혁>
- 요시야 왕은 우상 숭배의 온갖 유적을 철저하게 파괴했다. 이와 같은 처사는 만군의 여호와께 대한 충성심과 그 하나님을 거스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거룩한 의분에 의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은 어떤 것도 그 앞에 설 수 없다. 율법은(신 7:5) 가나안 족속의 우상 숭배 유적들을 모두 철저히 파괴하라고 명령했는데, 하물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 숭배 유물이야 어떠했겠는가? 이스라엘 민족의 우상 숭배 유적들은 보다 더 사악하고 속되고 불경스런 것들이었다. 그는 힐기야와 다른 제사장에게 성전을 깨끗이 청소하라고 명령했다. 이것은 그들이 해야할 직분이었다(4절). 바알을 위해 만들어졌던 모든 그릇들은 다 내다 버렸다. 그런 그릇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에 다시는 사용될 수 없었고, 더욱이 일상적인 용도로도 다시는 사용되지 않게 했다. 그들은 모두 불태워졌으며, 그 재는 모두 벧엘에다 뿌렸다. 벧엘은 우상 숭배의 공통적인 원천이 되어 왔었다. 그 이유는 그 곳에 송아지 우상이 하나 세워지자-그곳은 유다 가까이 있었다-그 나쁜 영향이 나라 전체에 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시야 왕은 벧엘을 우상의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즉 모든 오물을 그리고 갖다 쌓았다. 아마 그러한 처사는 우상 숭배를 즐겨오던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일이었을 것이다.
- 또한, 요시야는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을 모두 축출해 버렸다. 아론의 집안이 아닌 자들로서 바알이나 거짓 신에게 희생 제사를 드린 자들은 율법에 따라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모든 우상은 산산이 파괴되어 불태워졌고, 사악한 모든 집들, 즉 우상 숭배자들을 숨겨 주었던 불신앙의 은신처와 소돔 사람들의 집들을 헐어버렸다. 신접한 자들과 마술사들은 축출당했다(24절). 아마 요시야는 마술에 걸린 자들도 죽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마귀 같은 행실을 좇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일은, 그가 최근에 발견한 ‘그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24절)에 진실한 관심을 가지고 행한 것이다. 그는 그 율법을 자기 통치의 법으로 삼았고, 이 개혁을 완수하는 데도 그 율법을 유념했다. 요시야의 행동에서와 같이, 이 일은 매우 갑작스러운 결단의 결과인 것 같다. 우연히 그런 결심을 하고 무덤을 수색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제단이 여로보암에 의해 처음으로 세워졌던 350여 년 전에 이미 이러한 사실이 예고 되었었다(왕상 13:2). 하나님은 언제나 미래를 예견하시고, 때때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우연하게 생각되는 것도 확실히 예고해 주신다.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도다.” 요시야 왕의 마음도 그러했다. 그래서 그는 이 일을 하려는 뜻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열왕기하 24장 – 느브갓네살>
- 우리는 구약 성경의 역사와 예언에 있어서 중대한 영향을 끼쳤던 한 인물의 이름을 여기서 처음으로 대하게 된다. 그 이름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이다(1절). 그 이름의 뜻은 황금의 머리란 뜻이다. 그는 세력 있는 왕이었고,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의 땅에는 큰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만약에 그가 예루살렘 멸망과 유대인의 포로 사건에 개입되지 않았더라면, 그의 이름이 성서에 기록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여호야김에게 공물을 받았고, 3년 간 속국 상태로 붙들어 두었다(1절). 느브갓네살은 여호야김의 재위 제4년 때 통치하기 시작했다. 여호야김 재위 8년에는 느브갓네살이 여호야김을 포로로 잡아갔지만, 자기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약속하고 그에게 자유를 회복시켜 주었다. 3년 간은 그 약속이 지켜졌으나, 그 다음에는 아마 애굽 왕의 도움을 받을 희망으로 느브갓네살을 배반했다. 만약에 그가 자기 하나님을 그토록 섬겼더라면, 그는 바벨론 왕의 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일과 ‘열방들의 왕을 섬기는 일’과의 차이점을 알려 주셨다(대하 12:8). 만약 여호야김이 자기의 노예적인 위치에 만족하고 자기가 한 약속을 지켰더라면, 그의 처지가 그토록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벨론 왕에게 반역함으로써 그는 스스로 더 어려운 곤경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여호야김이 반역하자, 느브갓네살 왕은 그를 대적해서 그 나라를 멸하기 위해 자기의 군대를 보냈다.
- 그러나 본문에 보면, 그들이 바벨론 왕의 파송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라 왕 중의 왕이신 분의 명령을 받고 있다고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여호와께서 그(여호야김)를 대적하여” 이 모든 부대를 “보내셨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 바”(3절)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었더라면 느브갓네살의 명령만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일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유다를 괴롭혀서 고통을 당하게 하는 데는 므낫세의 죄악을 벌하시려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그의 죄를 삼 사대에서 벌하시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혹시 회개하는지를 알아보시기 위해서, 그들을 벌하기 전에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요시야 왕이 그들을 개혁하려는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조금도 뉘우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옛날로 돌아가 과거의 우상 숭배를 다시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제 그들이 옛 습관으로 옷을 갈아 입게 되었으니, 옛 심판을 다시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하나님은 예언의 성취를 의도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바로 “여호와께서 그의 종 예언자들을 통해서 하신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서” 된 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땅에 떨어지기보다는, 유다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사라지게 되고 천지가 없어지는 것이 더욱 쉬운 일이다.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경고도 약속처럼 확실히 실현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