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7장 – 하나님의 응답>
-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즉시 은혜롭게 응답하셨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살랐다”고 했다(1절). 이러한 방법으로써 하나님은 모세와(레 9:24) 기드온(삿 6:21), 다윗(대상 21:26), 엘리야(왕상 18:38) 등을 용납하셨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일반적으로 히브리 어법에 의하면, 번제를 열납하는 것은 그 제물을 재로 변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시 20:3). 그 불이 여기에 내려온 것은 희생 제물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을 위한 것이다. 이 불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사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므로, 지성소에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짙은 어두움을 가르는 이 불은 시내산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더욱 두려워했을 것이다(출 24:16, 17). 시온의 죄인들은 이 광경을 보고 “두려워하며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리요?” 하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사 33:14). 그러나 이스라엘에게는 은혜로우심을 보이셨다. 왜냐하면 그들을 소멸시키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지만 이 불은 그들 대신에 바쳐진 제물 위에 내려온 제물만 살랐고, 그것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의 제물을 열납하시사 진노를 돌이키셨다는 것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풀이해 보자. 그리스도의 고난에 적용시키자. 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시고 그를 상심케 하셨을 때, 하나님은 그 속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에게 짊어지게 하심으로써 인간에 대한 그의 선하신 뜻을 보여 주셨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 또한 그는 우리가 의와 축복을 유업으로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친히 죄와 저주가 되셨다. 그 제물이 불살라졌기 때문에 우리가 소멸을 피했다. “여기에 내가 있사오니, 이들은 저희 길을 가게 하소서.” 성령의 성화하는 능력에 적용시키자. 성령은 불꽃같이 내려와 우리의 정욕과 타락을 불사른다. 그 욕정과 타락의 희생 짐승이 소멸되지 않으면, 우리가 멸망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영혼 속에 경건하고 열렬한 믿음의 거룩한 불을 켜, 마음의 제단에서 항상 그 불이 타오르게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열납하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이 거룩한 불꽃이 우리 위에 내려오는 것이다.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 24:32)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를 열납하셨다는 또 다른 증거로써 여전히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였다”고 했다. 이처럼 거룩한 영광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채워진 마음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광대하심과(조금도 그의 영광에 손색이 없는) 선하심을 나타내신 바 있는 그 마음은 이미 그 사실로 인하여 있는 성전으로 인정된 것이다.
- 하나님께서 당신의 은총을 이처럼 은혜롭게 표하신 것에 대해 그들은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렸다. 백성들은 경배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3절). 하나님의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 온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놀라 달아나지 않고 여호와의 뜰에 계속 있었다. 그러면서 경외감을 품고 하나님의 영광을 숭앙했다. “저희가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 즉, 그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존전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의 권위에 기꺼이 복종하려는 마음,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올 가치가 없으며 그의 진노의 능력 앞에 설 능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을 표현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했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왔을 때에도, 그들은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라고 말하면서, 그를 찬미했었다. 이것은 결코 시기에 맞지 않는 그런 노래가 아니며, 우리의 마음과 입이 이것 때문에 불협화음을 이루어서는 안 된다. 아무튼 하나님은 선하시다. 그가 죄인들을 소멸시키는 불로 나타나실 때에도, 그의 백성들은 그를 자기들의 빛으로서 즐거워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들은 이 속에서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우리가 불살라지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인자하심 때문이니이다. 따라서 우리 대신 제물이 불살라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매우 감사하지 않을 수 없나이다”는 것이다. 왕과 모든 백성들은 풍성한 제물을 바쳤다(4, 5절). 이것으로써 그들은 이 하나님의 불을 기뻐하는 잔치를 베풀었고, 또 그 불이 제단으로 임하도록 기원했다. 그들은 과거에도 제사를 드렸었으나, 지금도 또 드리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총의 표시를 보면 그를 섬기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이 더욱 불타올라야 하며, 그것을 계속하도록 해야 한다. 왕의 모범이 백성들을 자극했다. 지도자가 선한 일에 앞장 선다면, 그 선한 일은 계속 되어나갈 것이다. 제물이 매우 많았으므로, 제단 위에 다 놓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어떤 것들은(그 피는 모두 제단에 뿌려졌으리라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을지라도) 되돌려져야 했고 번제물의 고기와 화목제의 기름은 뜰 한가운데에서 태워졌다(7절). 그 앞뜰은 솔로몬이 그 일을 목적으로 거룩히 구별해 두었거나 그 일 때문에 거룩히 구별되었을 것이다. 필요한 경우라면 도로가 제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각자 자기들의 직분을 수행했다. 노래 부르는 자들과 악기 다루는 자들은, 다윗이 만든 악기와 ‘다윗이 그들 손에 넘겨 준 찬송가’ (혹자들은 대상 16:7 을 그렇게 읽는다)를 가지고(또는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다윗왕이 레위 사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든 악기’를 가지고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했다. 솔로몬은 그들을 시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 일을 하게 했고, 또 그 일을 지도하며 격려했다. 그러므로 그들의 일이 솔로몬의 행위처럼 인정되었다. 그리고 그가 “레위 사람으로 찬송하게 했다”고 적혀있다. 온 백성들은 가장 큰 기쁨과 지극한 만족감을 표했다. 그들은 제2일부터 제9일까지 칠일간 낙성식의 절기를 지켰다. 제10일은 속죄일이므로, 그들은 죄에 대해 괴로워해야 했다. 또한 이러한 일들이 그들의 즐거움 중에 있어야 했다는 것이 불합리한 일은 아니었다. 제15일에는 초막절이 시작되어 22일까지 계속되었으므로, 그들은 제23일까지는 헤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와 교제를 나누는 데에 시간을 아껴서는 안 되며, 그것을 길게 생각하거나 지루하게 여겨서도 안 된다. 솔로몬은 자기의 직무를 수행했다. 그는 하나님의 전과 그 자신의 집을 장식하려는 모든 계획을 잘 수행했다(11절).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로 시작하는 자들의 사업은 성공적으로 되어 갈 것이다. 솔로몬이 자기가 시작한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었고, 그가 그 가운데서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다.
<역대하 8장 – 솔로몬의 도성들>
- 우리는 이것을 열왕기상 9장 10-24절에서 읽었으므로, 여기에서는 단지 다음과 같은 것들만 살려보기로 하자. 솔로몬은 매우 박식한 자였지만, 묵상하는 일이 아니라 행동하는 일에 나날을 썼으며, 자기의 서재가 아니라 국가 건설에, 즉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평화시에는 성을 건축하고 요새화하는 일로 나날을 보냈다. 이것은 여름에 겨울 양식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에게 매우 큰 일이다. 그는 사업가였고, 자기 자신의 안일을 추구하지 않았듯이, 매우 많은 일손들을 고용하여 많은 백성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했다. 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산업을 촉진시키고 장려하여 백성들이 나태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나라의 큰 유익이 된다. 이스라엘에는 이방인들이 매우 많았고, 그 가운데는 가나안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거기서 사는 것은 환영받았으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었다. 하는 일 없이 살아가던 라이스 사람들은 쉽게 침입자들의 먹이가 되었던 것이다.(삿 18:7).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시작하고 선한 사업을 만들고 그 사업을 촉진시켰을 때, 그의 모든 일은 형통했다. 그래서 그는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했다(6절). 건축에 재능이 있는 자들은, 한 가지 설계가 또 다른 설계를 요구하며 후자는 전자를 수정하고 계량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제 다음을 살펴보자. 하나님의 섭리는 솔로몬의 기호까지도 충족시켜 주었다. 그가 건축해야 했던 건물과 또한 자기의 유익을 위해 건축하는 그 모든 사업뿐만 아니라 그가 건축하고자 마음먹었던 그 모든 일들까지도 성공케 했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을 섬기는 자녀들의 순수한 소망을 때로는 이렇듯 열심히 이루어 주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는 약속을 주심으로써 야곱을 기쁘게 하셨다.
- 솔로몬의 헌신을 보자. 성전을 건축한 것은 성전의 예배를 위한 것이었다. 건물을 세우는 데 아무리 비용을 많이 들였다 하더라도 거기서 해야 할 예배를 소홀히 한다면, 그 건물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예배를 돕는다고 해서 자기 자신은 예배를 빼먹어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솔로몬은 이 성전을 건축하고 나서 모세의 율법대로 항상 거룩한 제물을 바쳤다(12, 13절). 그 제단의 음식과 그 제단의 불꽃의 연료를 위한 희생 제물이 꾸준히 바쳐지지 않았다면, 제단을 지은 것이나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왔다는 것이 모두 헛된 일이었을 것이다. 11월에는 월례적인 제물을 드렸고 매년 3번씩 엄숙한 절기를 맞아 연례적인 제물을 바쳤다. 지금 우리가 날마다 주마다 바쳐야 할 제사는 영적인 제사이다. 그리고 그 제사 방식은 일정하게 정해 놓는 것이 좋다. 솔로몬은 ‘다윗의 법’에 따라 거룩한 노래를 항상 드렸다. 여기서 다윗이 모세처럼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제도를 만들도록 지시받고 또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매일 합의한 대로 그것이 준수되는가를 살폈다(14절). 솔로몬은 비록 지혜롭고 위대한 자였고 성전을 건축한 자였지만,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한 것에 다른 것을 부과하거나 변경시키려고 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철저히 고수했다. 그리고 그것이 잘 지켜지는가를 살피는 데에 자기의 권위를 사용했다. 따라서 “아무도 무슨 일에든지 왕의 명한 바를 어기지 아니하였다”고 했다(15절). 그가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자 모든 사람들은 그의 명령에 복종했다. 성전의 예배가 이처럼 잘 되어가자, “여호와의 전이 결점이 없이 필역하였다”고 일컬어지고 있다(16절). 그 장소가 아니라 그 사업이 주된 문제였다. 따라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야 비로소 성전이 완성되었다고 했다. 솔로몬의 무역을 살펴보자. 그는 친히 엘롯과 에시연게벨이라는 항구 도시를 방문했다. 왜냐하면, 세상 일을 많이 하는 자들은 될 수 있는 한 자기들의 문제를 직접 조사하고 자기들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7절). 가나안은 산물이 풍족한 땅이었지만, 금을 위해서는 모빌로 가야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혜롭고 총명한 백성들이었지만, 바닷길을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두로 왕의 신세를 져야만 했다(18절). 그러나 가나안은 하나님이 특별히 여기는 땅이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었다. 이것은 금이 아니라 은혜가 가장 훌륭한 재물이며, 예술이나 과학과 사귀는 것보다 하나님이나 그의 율법과 사귀는 것이 가장 훌륭한 지식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역대하 9장 – 스바 여왕>
- 이 구절의 이야기는 열왕기에서 자세히 관찰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 구주께서도 이 이야기를 당신께 대한 우리의 물음에 대한 한 대답으로 제시하였던고로(마 12:42), 우리는 위의 이야기에 대해 다음 몇 가지를 간단히 살펴보아야 하겠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하나님이 존중히 여기실 것이다”(삼상 2:30).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미화하고 봉헌함으로써 하나님을 매우 존중히 여겼다. 그의 온갖 지혜와 재물은 하나님이 건축물을 완전한 작품으로 만드는 데에 동원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 솔로몬의 지혜와 재물을 크게 더하게 하여 그의 명성을 더욱 빛내 주셨다. 우리의 재능과 기쁨으로 인해서 신망과 위안을 다같이 누릴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을 하나님께 봉헌하고 하나님을 위해 쓰는 길이다. 참된 지혜의 가치를 아는 자들은 지혜를 얻는 데에는 수고나 비용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몸소 큰 수고와 비용을 들였다. 그러나 솔로몬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기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는 법을 배운 그녀는, 자기가 그러한 수고를 지불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거룩한 지혜는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고서 사려는 ‘값진 진주’ 이다. 각 사람이 은사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각 사람은 기회 있을 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깨우치는 데에 힘써야 한다. 솔로몬은 자기의 지혜에 대해 말하기를 좋아했고,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자 했다. 하나님께로부터 배웠으므로, 그는 거져 받았다. 그래서 거져 주었다. 재물이 풍족한 자는 물론이요 지혜가 풍족한 자들도 선을 행하고 나누어 주는 것을 배우도록 하자. “구하는 자 모두에게 주라.” 가정의 아름다운 질서, 특히 대가족 속에서 하나님의 일들을 잘 수행하는 좋은 질서를 유지하며 종교적인 예배의 의무를 규칙적으로 이행하는 일은 지극히 잘하는 일이요, 그런 것은 어디에서 발견되든지 경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의 종들이 솔로몬을 섬기는 예절과 하나님의 전에서 시중드는 예절을 보고 지극히 감동되었다. 다윗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갈 때 기뻐하고 즐거워했다(시 42:4).
- 이처럼 유명하고 지혜롭고 선한 사람들과 더불어 항상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진 자들은 행복하다. 스바 여왕은 계속 그의 지혜를 듣는 솔로몬의 종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종들과도 잘 대화하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뜰에 거하던 자들의 후손들이 이제 기꺼이 자기들의 조상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자기들이 솔로몬의 신복의 자손이라 불리우는 것을 자신들의 지극한 명예로 생각했다는 사실(스 2:55; 느 7:57)은 주목할 만하다. 솔로몬의 종들은 매우 뛰어난 자들이었으므로, 그렇게 불리워진다는 것은 충분히 영예로운 일이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은사와 은혜와 유용함을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스바 여왕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보좌에 등용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부여하신 영예와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총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송축했다(8절). 다른 사람들을 형통케 해주신 하나님께 찬미함으로써, 우리도 그들의 즐거움에는 동참할 수 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의 형통함을 시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즐거움마저 잃어버린다. 그녀는 그 왕과 그 나라의 행복으로 인하여 모든 축복의 근원인 거룩한 은총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기뻐하시고, 또 그가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 이라고 했다. 우리가 바로 우리들의 하나님의 친절과 자비하심을 맛볼 수 있게 된다면, 그 기쁨은 두 배나 된다. 자기들의 지위와 능력에 따라 관대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그러했고, 솔로몬은 그녀에게 그러했다(9, 12절). 그들은 둘 다 지혜를 평가할 줄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그들의 돈을 탐내지 않고 서로의 교제를 깊게 했으며, 서로 선물을 줌으로써 우정을 확고히 했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망을 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우리는 예수께 무엇을 드려야 할까를 연구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거나 고난을 겪거나 어떤 것을 포기한다고 하여 결코 지나치다고 생각지 않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