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장 – 성전 재건>
- 우리는 여기에서 여인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있었던 오랜 원수지간의 한 예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성전은 세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탄은 맹위를 떨치고 “지옥의 문은 그것을 대항해 싸울 것이다.” 복음의 왕국은 이와 같이 많은 투쟁과 싸움을 통해 세워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제2성전의 영광은 앞선 성전의 영광보다 크며, 반대도 없고 악한 방해도 없었던 솔로몬이 세운 성전에 비해(왕상 5:4) 더욱 그리스도 교회의 모습을 잘 드러내 주는 성전이다. 그러나 이 제2의 성전은 큰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반대를 제거하고 정복하여 결국은 세워졌으며, 그 반대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완성되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선함이 더욱 크게 영광 받았고, 그 교회는 더욱 하나님을 신뢰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성전을 재건하려는 자를 본문에는 ‘사로 잡혔던 자의 자손’ (1절)이라고 칭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이제 막 포로에서 돌아왔고, 포로된 중에 태어났으며, 아직도 포로의 징표를 몸에 지니고 있는 자들이었다. 비록 지금은 포로가 아니었지만 아직도 자기들을 포로하던 자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의 장손이다. 그러나 저들의 부정함 때문에 팔려갔고 노예가 되었으며, 결국 포로민의 자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이 자유를 상실한 것은 성전을 무시했었기 때문이라는 자각 때문에 더욱 분발하여 이 사업에 나섰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 사업을 반대하는 자들을 여기서는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갈대아인들이나 바사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10 지파들 중 남은 자들과 또 그들과 연합한 이방인들이었고, 우리가 열왕기 하 17장 33절에서 그 내용을 볼 수 있는 대로 혼합 종교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들은 여호와를 경외했으나 그들 자신의 신들도 역시 섬겼다.” 그들은 ‘열국 백성’ 이라 불리었다(4절). 유다와 베냐민이 만난 최악의 원수는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한 (계 3:9) 자들이었다. 그들의 대적은 옛 뱀의 간교함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성전이 세워지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자기들의 미신에 결정적인 타격이 되리라는 것을 즉각 알아채고 거기에 대적했다. 그들은 강제로 성전 재건을 저지할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썼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그 일을 하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그 일을 도와주는 척하면서도 오히려 지연시킬 기회를 가지자는 것이었다. 그들의 제의는 충분히 찬성할 만하고 친절해 보인다.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가 너희를 돕겠고 비용도 부담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2절). 이것은 거짓이다. 그들이 비록 동일한 하나님을 구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방법으로 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이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구하지 아니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능한 한 성전 세우는 것을 방해할 길을 구한 것이며, 그렇게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이 일을 안전하게 끝내는 것은 방해하려고 했다. 참된 하나님을 순수히 예배하고 또 그만 예배하기 위해 성전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성전이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것이 “원수를 속이는 입맞춤이다.” 칼을 마음에 품고 있으나, 원수의 말은 버터보다 매끄럽다.
- 그들이 제안 한 것을 거절한 것은 대단히 잘 한 것이다(3절). 이스라엘 족장들은 즉시 그들이 어떤 태도로 가장하든지 간에, 그것들이 친절이 아니고 사실상으로는 자기들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만큼 진실이었다면 사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했지만) 그들에게 명백히 말했다.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참여도 안 되고 부담도 질 필요가 없으며, 너희는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며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예배자들도 아니다. 너희는 너희가 모르는 것을 예배하는 자들이다(요 4:22). 너희는 우리가 감히 교제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성전을 건축할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과 섞이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율법으로 그들에게 항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을 더 잘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들은 다만 그들에게 지시된 왕의 위임만 말했을 뿐이다. “바사 왕은 우리에게 이 전을 세우라고 명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외국의 원조를 구하다면 그 왕을 불신임하는 것이며, 모욕하는 것이다.” 선한 일을 함에 있어서 비둘기의 양순함이 필요함같이 뱀의 지혜도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을 삼가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마 10:16, 17). 우리는 우리를 돕는 사람을 주의해서 생각해 보아야 하며,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사람을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는 경건한 신뢰심으로 의지하겠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사려 깊은 경계심과 주의를 기울여 신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이 음모가 실패되자, 이 일을 못하게 하고 좌절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행했다. 그들은, 건축자들을 보고 완성해 낼 수 없는 일을 시작하는 ‘어리석은 건축자들’ 이라고 말하면서 그 일을 시도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고 하여, 그들의 일손을 약하게 했고, 각가지 중상으로 괴로움을 주었고 일이 힘들게 했다. 모든 사람이 다 이 일에 똑같이 열렬했던 것은 아니다. 냉담했던 자들과 무관심했던 자들은 그들의 도움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술책 때문에 그 일에 손을 떼버리기도 했다(4절). 그들이 무슨 말을 했든지 유대인들은 낌새를 알아차리고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은밀히 모사꾼(議士: 개역)들을 고용하여 그들에게 가장 좋은 충고를 해주는 척하여 그 일을 방해했고, 그들의 목적을 좌절시키려고 했다(5절). 혹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과 계약한(3:7) 목제를 공급하지 못하게 했다. 이스라엘 해방에 대한 칙령에 따라서, 어떤 특정한 특혜를 얻기 위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바사 궁정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지는 모르나, 이스라엘에게 불리한 조언을 하기 위해 고용된 모사꾼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는 일에 반대하는 교회 원수들이 끊임없음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과 그들이 행하는 사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온 세상 어디서나 해치려는 세력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역사하신다. 선한 사업을 실망시키고 그 일을 행하는 자들의 손을 약하게 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누구의 전철을 밟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에스라 5장 – 선지자들 격려>
- 성전 건축이 보류된 것을 단 9년간으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나는 최대한 15년간으로 보고 싶다. 이 동안에는 저들에게 제단과 성막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이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행할 수 없을 때는, 할 수 있는 일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며, 그러면서도 우리가 좀 더 잘할 수 없음을 안타까와 해야 한다. 그러나 그 동기를 방해하는 목적으로 고용된 모사꾼들(4:5)은, 그들에게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1:2)고 말하면서, 영감을 얻어 말하는 듯이 가장했다. 또한 멀지않아 솔로몬의 성전을 건축할 때가 온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하나님의 전을 황폐케 한 채 자기들의 내실에서 편히 쉬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여기에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 이 선한 사업에 어떻게 생기가 주입되는가를 읽게 된다. 그들에게 2명의 훌륭한 사역자가 있었다. 이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일을 다시 가동하도록 진심으로 권유했다. 이 하나님의 종들은 누구였는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로서, 학개 1장 1절과 스가랴 1장 1절에 나타난 대로 다리오 제 2년에 예언하기 시작했다. 다음 사실을 주목하자. 인간들 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예언에 의해 건축되어야 한다. 즉 세속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그것은 흔히 성전의 건축을 방해하며 거의 진척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건축되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의 병기처럼, 건축의 도구도 역시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라야 한다. 그리고 건축하는 자들은 복음의 일꾼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선한 일을 하도록 촉구하고 그 일을 하는 그들을 도우며 그들의 손을 강하게 해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깊이 묵상해 보고서 그들에게 의무를 잘 수행하도록 촉구하고 격려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을 일으키시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길을 가고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돕는 자들이 되게 하며, 인도하는 자들이 되며 감독하고 다스리는 자들이 되게 하신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긍휼을 예비해 두신 증거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보내어졌는가? 그들은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다. 즉 에스겔이 마른 뼈들에게 예언하여 생기 있게 하려 했던 것처럼(겔 37:4) 그들에게 예언하였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혹은 하나님을 위하여 예언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 말했으며,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과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및 하나님 영광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들에게는 두 명의 훌륭한 치리자가 있었다. 그들은 이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들은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였다(2절). 권세와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권세로 선한 사업을 하는 영예를 이루어야 하며, 그 모든 선한 사업을 원활하게 하는 데 권력을 사용해야 한다. 남의 앞장에 서고 다스리는 일을 맡은 자들은 모든 의로운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앞서서 모범적인 배려와 성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다. 이 요인들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지도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지 않고 행복하게 생각했으며, 이 선한 사업을 복구하는 일을 기쁘게 도와주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통해 얼마나 크게 역사하는가를 보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무엇보다도 그의 이름을 존귀케 하시며, 성령이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신다.
- 성전 건축 사업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이웃 사람들이 즉시 알았다. 그들은 유대 사람들을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성전의 친구들을 깨우쳐 성전을 계속 건축하게 하자마자, 악한 영도 자기의 대적들을 깨워 거기에 대항하도록 만들었다. 백성들이 자기들의 집을 건축하고 중수하였을 때는, 상관하지 말라는 명령을 왕이 내렸었다(학 1:4). 그러면서도 왕의 조서는 도성 건설을 중단시키었다(4:21). 그러나 그들이 다시 성전을 건축하려 했을 때는, 비상 경보가 울렸고, 총독들은 모두 그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3, 4절). 이들은 비록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대적들이기도 했지만, 전번 관리들보다는 더 나은 성품을 지니고 있었고, 진상을 어느 정도 깨닫고 있었다. 만일 믿음은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는 때에(살후 3:2), 다소나마 믿음을 가지는 것은 훌륭한 일이요 명예로운 일이다. 교회의 적들은 모두 똑같이 사악하고 무모한 것은 아니다. 본서를 역사가는 건축자들과 심문관들 간에 있었던 일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3, 4절). 그러나 그의 설명을 중단하고서, 그들이 왕에게 보낸 상세하고 장황하게 기록된 편지의 초본을 요약(4절) 혹은 발췌해 놓고 있다. 비록 그것은 회고하여 쓴 것이긴 했지만, 전체의 내용을 기재해 놓았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 선한 역사를 돌보셨다(5절).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다. 그들은 이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었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적은 이전처럼 공사를 그치게 할 수 없었으므로, 마침내 다리오 왕에게 보고하기까지 되었다. 그들은 왕명이 있기까지만 그 일을 멈추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것을 포기하도록 강권하려 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하나님, 곧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돌아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대적은 낭패를 당했고, 당황하게 되었고, 약화되었다. 반면에 그 건축자들은 그들의 사악한 계략으로부터 보호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그의 특별한 보호를 얻게 된다. 그는 영원히 우리를 돌아보실 것이며, 그의 성전 안의 돌 하나에 7 눈이 지킬 것이다(슥 3:9; 4:10). 그것은 그들을 재촉했다. 유다 장로들은 자기들을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깨닫고, 자기들이 행한 것을 살펴보고는 잘한 것임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적과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며, 어떠한 장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일을 강력히 밀고 나갈 담력을 얻었다.
<에스라 6장 – 고레스 조서>
- 성전을 건축하는 데에 관한 고레스왕의 조서가 반복되어 있다.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내세웠기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것을 언급해 놓았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은 이것이 발견되지 않아 유대인의 청원이 파기되어 그 공사는 중지하게 되리라고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조서를 찾아보라는 명이 내려졌다. 유대인들은 그 조서의 공인 사본을 간직해 두고 있지 않았다. 사본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대단히 유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원본에 의지해야 했던 것 같다. 바벨론에서 원본을 조사하게 했다(1절). 그곳은 고레스왕이 조서에 서명한 장소였다. 그러나 그것이 그곳에서 발견되지 않았을 때도, 디리오왕은 그곳에는 그러한 조서가 없다는 구실을 내세워 유대인을 처벌하려 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이러한 조서가 분명히 선포되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찾아보도록 하라는 명을 내렸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은 악메다 궁에서 발견되었다(2절). 원본이 없어지면 유대인들이 그 조서의 혜택을 못받으리라고 생각한 어떤 자들이 유대인에게 앙심을 품고, 감히 소멸해 버리지는 못하고 거기다 숨겨두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원본이 알려지도록 역사하셨다. 그래서 그것이 여기에 게재되었다(3-5절). 여기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이 나와 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그 전을 건축하게 하라.” 그리고 이러한 크기로 하라. 이러 이러한 재료로 만들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 왕의 세입으로부터 성전 건축 비용을 주도록 명시되어 있었다(4절).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에게 명해진 것을 그들이 받았다는 기록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중에서 벌어진 일의 양상은 쉽게 변하기 때문이다. 느브갓네살이 가져간 성전의 기명과 기구를 돌려줌과 동시에(5절) 제사장들 곧 하나님의 종들은 모두 하나님의 전 안에서 행할 직무로 돌아갈 것을 명했다. 이 원본은 다리오왕의 조서로 다시 공인되었고, 견고케 되었으며, 곧 실행되었다. 다리오왕의 조서는 매우 명백하고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그는 그의 관원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내용의 표현을 살펴보면 그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고자 한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너희들은 그곳을 멀리하고(6절), “하나님의 전 역사를 막지 말라”(7절)고 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대적들의 격노함이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다. 이것을 생각하는 원수들은 자제하게 된다. 그는 그들에게 명하여 그 자신의 세입으로 그 건축하는 자들을 돕도록 했다. 그것은 건축 자금이었다(8절). 이 점에서 그는 고레스왕의 본을 따랐다(4절). 성전이 건축되었을 때는, 그곳에 드릴 제물을 구입하는 데 쓰여졌다(9절). 그는 유대인들에게 번제와 소제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도록 명했다. 그는 자기의 세입에서 대지료(貸地料)를 지불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래서 어김없이 매일 그 돈을 바치도록 명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제물을 드리고 거기에서 왕과 왕자 생명을 위해 그 제물들을 드리고(왜냐하면 그들의 조상들은 제물을 바칠 때 기도드릴 수 있게 했다(10절).
- 여기에서 그가 첫째, 어떻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예롭게 했는지 살펴보자.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하늘의 하나님’ 이라 불렀다. 둘째, 그가 하나님의 일꾼들을 어떻게 영예롭게 했는가를 보자. 즉 그는 그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제사장들의 명령에 따라서 성전 예식을 위해 필요한 물자를 공급해 주도록 하였다. 그들을 지배하려 했던 자들은 이제 이 일에 있어서는 그들의 명을 받아야만 했다. 하나님의 제사장들이 이처럼 국고에서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일이었다. 셋째, 그가 어떻게 기도를 영예롭게 했는가 보자. “왕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게 하라”고 했다. 그는 그들이 기도하는 백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들 가까이 계시어 그들이 구하는 모든 것을 살피신다는 사실을 들어왔다. 그는 그 자신에게도 그들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과 그들에 의해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기도로 인한 유익함을 얻을 수 있기 위해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권세를 잡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무이다. 선하고 온유한 집권자들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심술궂은 집권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특별히 자기들을 보호해 주는 자들이나 은인들을 위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왕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원하고 그들을 고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도 가장 초라해 보이는 성도들의 기도를 멸시하지 않도록 하자. 우리가 그들과 화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적대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는 형벌을 가미시켜 그의 조서를 강력히 시행토록 했다(11절). 그는 이 전을 헐려고 거기에 손을 대는 모든 왕들과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저주가 내린다고 했다(12절). 성전을 보호하기 위해 그 스스로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모든 진노를 갚으시는 하나님께서 행해 주시기를 바랐다. 이것은 그가 성전 건축에 매우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비록 이 성전은 마침내 하나님의 정의에 의해 가장 의롭게 파괴되었지만, 이 전을 파괴시키는 도구가 되었던 로마 사람들은 아마 이 저주의 효력을 입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후 로마 제국은 현저하게 망해갔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열왕의 마음은 하나님의 수중에 있으며,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대로 그 마음을 움직이신다. 그들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왕중 왕’ 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계획을 성취해야 될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은 감히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걸지도 못했던 도구들을 일으키시어 그 계획을 성취시키실 것이다. 땅이 때로 여인을 도우며(계 12:16), 거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 믿음을 방어하는 일에 사용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역이용함으로써 교회를 침해하려는 의도를 행해진 일들이 흔히 교회에 유익을 가져오기도 한다(빌 1:12). 유대인의 적들은 다리오왕에게 호소함으로써 유대인을 탄압할 명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은 유대인을 도우라는 명을 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