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7장 – 에스라의 혈통>
- 에스라의 혈통을 보자. 그는 제사장 아론의 후손이었다.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선한 도구로 택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제사장의 직분을 영예롭게 했다. 그들의 영광은 제사장들이 포로가 됨으로 인하여 실추되었다. 그는 ‘스가야의 아들’ 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스가야는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을 약탈했을 때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인물로 추정된다(왕하 25:18, 21). 간단히 계산해 보면, 스가야가 죽은지 이제 75년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 기간을 보다 훨씬 길게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에스라는 이 당시 공적인 봉사를 위해 부름을 받은 주요 인물이었으므로, 그들은 스가야가 그의 직계 부모가 아니고, 그의 조부였거나 그의 증조부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스가야는 에스라의 가문에서는(그의 앞에서는) 제일 처음으로 뛰어난 인물이었고, 그 계보는 아론이라는 훌륭한 자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간결케 하기 위해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는데, 여기에서 빠진 자들은 역대상 6장 4절 이하에 보충되어 있다. 그는 장남이 아니었거나 요수아의 아버지인 여호사닥의 아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대제사장이 아니었으나 그 대제사장과 동류였다. 그의 성품을 보자. 그는 비록 장손 집안의 태생은 아니었으나, 그의 개인적인 자질은 매우 뛰어났다. 그는 매우 지식 있는 자로 학사였다. “모세 율법에 익숙한 학사였다” 고 했다(6절). 그는 성경에 특히 모세의 율법에 매우 통달한 자였으므로, 그 말씀에 익숙했고 그 의미와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바벨론에 있는 유대인들 가운데서는 배우는 일이 점점 저조해 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에스라가 그것을 부활시키는 역할을 했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그는 자기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율법의 사본을 수집하고 순서를 맞추어 그 정확한 책자를 발행해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예언서와 역사서와 시가들과 더불어 이것은 구약의 경전을 만들었고, 거기에 자기 당대의 시대에 예언과 역사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다고 말한다. 만일 그가 하나님에 의해 들린 자로서 이 일을 행할 자질과 마음을 얻게 되었다면 모든 세대는 그를 축복해야 할 것이고, 또 그를 인하여 하나님을 송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선지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셨다(마 23:24). 에스라는 후자의 명의를 지녔다. 마지막 예언자들의 말에 따르면(말 4:4), 이제 예언이 끊어질 때가 되었으므로 성경 지식을 개발시켜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복음의 일꾼들은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마 13:52) 즉 신약 성서의 서기관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이와 같이 귀한 이름을 지닌 자들이 즉 율법의 조문은 잘 아나 그 정신을 모르던 자들 때문에 유대교가 퇴폐된 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는 것은 유감된 일이다. 그는 매우 경건하고 거룩한 열심을 품은 자였다(10절).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했다. 그가 연구하기로 정한 것은 바로 여호와의 율법이었다. 그는 갈대아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들은 문학으로 유명했고 특히 점성학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그는 학문을 좋아하는 자였으므로, 우리는 그가 점성학에 몰두하려는 유혹을 받았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유혹을 물리쳤다. 그는 그들의 마술이나 점성술에 대한 서적보다도 자기의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 귀하게 여겼고, 그들의 학문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였다.” 즉 그는 그것을 탐구하고 조사하며, 하나님의 지식과 마음과 뜻을 성서에서 찾는 것으로 자기의 사업을 삼았다. 이러한 모든 것은 성경에서 발견될 수 있으나, 연구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자기의 규칙으로 삼고, 그것으로 감정과 기질을 조절했고, 모든 교제도 거기에 맞추어 이끌어 나갔다. 우리도 이러한 방법으로 성경의 지식을 활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할 때는 행복하다. 그는 그 율법의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했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전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가 주어지는 것은 그것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그 방법을 잘 살펴보자. 그는 먼저 배우고 나서 가르쳤다. 그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훌륭한 지식을 저축한 다음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저장해 둔 지식을 방출하였다. 그는 또한 먼저 행한 다음 가르쳤고, 그 자신이 실행한 후 다른 사람도 따르도록 지시했다. 이처럼 그는 실행으로 자기의 교훈을 가르쳤다. 그는 마음을 정하였다. 그는 그의 연구에 노력을 쏟았고, 그가 뜻한 것을 완전히 통달했을 때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결심을 했고,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여 이와 같이 익숙한 학사가 되었다. 모세는 애굽에서, 에스라는 바벨론에서 모두 사로잡힌 자였으나 교회를 위해서는 뛰어난 봉사를 할 수 있는 매우 합당한 인물들이었다. 그는 자기 나라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다. 그는 바벨론에서 올라와(6절),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8절). 그의 동포들이 이미 올라온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바벨론에 있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할 일이 있을 때까지는 그를 거기에 보내지 않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일으켜 주신 자들 이외에는,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 아닥사스다왕은 조서를 선포한(6장) 다리오왕과 같은 인물이고, 에스라는 성전이 필역된 바로 그 다음 해에 올라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하나님은 그에게 얼마나 친절했는가? 그가 왕과 백성들로부터 호의를 얻은 것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었기 때문이었다(6, 9절).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요, 우리의 심판은 그에게서 나온다. 하나님의 손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깨달아야 하듯이,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 속에서는 하나님의 손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선하신 손’ 임을 깨달았을 때는, 그에게 감사를 돌려야 한다.
<에스라 8장 – 2차 귀환자들>
- 에스라는 왕의 명을 받고 지원자를 모았다. 말하자면 기호를 세워 쫓겨난 이스라엘인들과 분산된 유대인들을 모았다(사 11:12). 이제 이러한 지도자를 가지게 되고, 이처럼 격려를 받은 모든 유대인은 드디어 그 부름에 응하여 티끌을 떨쳐버리고 그 목의 줄을 스스로 풀어야 할 (사 52:1, 2 이하) 때가 왔다고 누구나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얘기를 듣고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겠는지 의문스럽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은 믿음보다는 그들의 안이를 더욱 사랑했으며, 현재 있는 그 곳에서 편히 지낼 것을 희망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이 그들에게 좀 더 나은 조건을 마련해주지 못하리라고 믿었거나, 또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견디며 그곳으로 가려는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이러한 자들도 있었다. 기꺼이 에스라와 함께 가고자 하는 자들도 있었다. 여러 족장들의 이름이 영예롭게도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각 족속에서 온 남자들의 수효는 모두 1496명이었다. 두 명의 제사장의 이름이 나와 있으며, 다윗 자손의 이름도 하나 적혀 있다(2절). 그러나 그들은 가족을 데리고 오지 않은 것 같다. 아마도 그들은 먼저 예루살렘의 형편을 살핀 후 가족을 불러오거나, 아니면 불가피한 경우에는 그들에게로 되돌아가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2장에서 읽은 바 있는 족속, 또는 가족들의 이름 여러 개가 다시 열거되어 있다. 그 당시에 몇몇 사람들이 올라갔고,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시자 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갔다. 어떤 자들은 제3시에 포도원으로 부름을 받았고, 또 어떤 자들은 제11시에 부름을 받았으나, 후에 온 자들도 거절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본문에는 우리는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에 관한 기사가 있다(13절). 그런데 그들이 맨 마지막으로 에스라의 부름에 응했으므로, 그들의 수치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것을 그들의 영예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 족속의 아들이 모두 돌아왔으므로 그곳에 남아 있는 자가 하나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 아들과 함께 갔던 레위 사람들은 어느 모로는 성전 봉사를 할 수밖에 없도록 압력을 받았다. 에스라는 새해 정월 초하루에 그의 무리를 일정한 곳에 모이게 했다(7:9). 그 때 거기에서 그는 사람들을 살피고 검열했으나(이상하게도), “그 중 레위 자손이 하나도 없었다” (15절). 몇몇 제사장은 있었으나 다른 레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거룩한 지파의 영은 어디 있는가? 제사장 에스라는 모세처럼 “여호와의 수종들 자가 누구인가?” 하고 외쳤다. 그들은 레위 사람답지 않게 움츠렸으며, 양 우리에 거하면서 양떼의 소리를 듣기 원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바벨론에서 회당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기도하고 설교하고 안식일을 지켰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이 좀 더 나은 것을 가질 수 없었을 때 그들은 그 회당을 더욱 감사히 여길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예루살렘의 성전이 열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봉사를 행하게 되었으므로, 그들은 이 모든 회당들보다는 시온에 있는 성전을 택했어야 했다. 이러한 사실이 그들의 책망으로 여기에 기록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가드에는 알리지 말라”고 했다. 에스라는 자기 수행자들 가운데 레위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매우 당황했다. 그에게는 성전 봉사를 위한 충분한 돈은 있었으나, 사람이 부족했다. 왕과 방백들은 그들의 임무 이상의 것을 해 주었으나, 레위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책임을 반도 이행하지 못하였다. 그는 그 무리 중에서 11명을 뽑았는데, 그들은 족장이거나 명철한 자들이었으며, 그는 이 슬픈 공백을 채우는 데에다 그들을 임용했다. 이제 그 내용을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그들은 성공했다. 그들은 무의미하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비록 그들이 받은 명은 짧았지만, 그들은 에스라를 도울 레위인을 40명쯤 데리고 왔다. 즉 매우 명철한 자로 주목되고 있는 세례바와 함께 18명을 데리고 왔으며(18절), 하사뱌, 여사야와 함께 20명을 데리고 왔다(19절). 이것으로써, 그들은 가기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나태하고 부주의하여 단지 부름을 받고 재촉 받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단순히 촉구를 받은 일이 없기 때문에 훌륭한 자들이 훌륭한 일을 못했다면, 그것은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그 신성한 학교의 종들인 느디님 사람들 즉 성전 일을 맡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자들이 이 레위 사람들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가고자 했음이 밝혀졌다. 이리하여 급히 소집되어, 220명이 왔으며, 이들의 이름은 에스라의 점호 명부에 기록되는 영예를 얻게 되었다(20절). 이와 같이 에스라는 말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에게 선을 베푸사 레위 사람들을 보내 주셨다.”
<에스라 9장 – 유대인들의 부패>
- 예루살렘에 왔을 때 그곳에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내려졌던 하나님의 은혜를 본 바나바와 같이, 에스라도 물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하였을 것이 분명하다(행 11:23). 그는 잘못된 것을 목격하지 못하였다(많은 타락들이 감시하는 자들의 눈을 피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기쁨은 찬서리를 맞게 되었다. 즉 많은 사람들과 그 지도자들이 이방 족속에서 아내를 취하고, 이방 사람과 친밀히 지내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이다. 다음을 관찰하자. 그들이 범한 죄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이방 족속과 서로 섞여 (2절) 교역을 하고 교제를 나눔으로써 그들과 친밀히 지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딸을 취하여 자기들의 아들에게 줌으로써, 그들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일이었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들이 사로잡혔던 경험이 우상 숭배를 범하는 것을 고쳐주었을 것이라고 바랄 수도 있다. 여기에는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고 적혀있다. 여기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명백히 밝혀진 명령, 즉 이방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말며 특히 그들과 결혼하지 말라는 명령(신 7:3)에 복종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별성이라는 자기들의 면류관을 더럽혔으며, 이전에는 물론 최근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은총을 표하는 유일한 표적으로 존귀케 해준 그들 자신들을 이방 사람들과 같은 수준에 놓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을 보호하고 발전케 해주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않고 정욕이 이끄는 대로 따랐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렇게 이방 사람과 동행함으로써 그들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그 이웃들간의 세력을 얻으려 했던 것이다. 우리가 자신들을 구제해 보려는 비열한 방법 근저에는 하나님의 풍성하심에 대한 실질적인 불신이 깔려 있다. 그들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우상 숭배라는 바로 그 죄의 위험성 가운데 몰아넣고 있었고, 그들의 교회와 민족을 이미 파멸하게 했던 바로 그 길을 다시 좇고 있었다.
- 이러한 죄를 범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별로 학식이 없는 이스라엘의 몰지각한 몇몇 사람들뿐만 아니라, 율법을 가르치는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에게 이 율법을 전해야 하는 많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도 이 죄를 범했다. 그들은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으므로 이들의 죄는 더 중했다. 다른 지파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은 그 지파 자손들의 수를 감축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왕족 지파와도 결합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 그리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이방 사람들과 결혼했다는 것은, 자신들을 욕되게 하는 행위였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의무감을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도 영예심을 지니고 있었다면, 결코 그런 죄를 범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도 아니었다. 이와 같은 비행을 막고 개혁 해야할 권한을 지니고 있는 “방백들과 두목들이 이 죄에서 더욱 으뜸이 되었다.” 방백들이 범죄하면, 그들은 그 죄의 주동자로 책망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악한 행실을 따를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을 타락시키고 잘못을 범하게 만드는 지도자들을 지닌 백성들의 처지는 비참하다. 에스라에게 이 소식을 전한 자들은 누구였는가? 그것은 그러한 호소를 하기에 가장 합당한 사람들에 의해 보고되었다. 즉 자기들의 정직과 품위를 보존하고 있던 방백들 가운데 몇 명이 그것을 고했다. 자기들에게 비난받을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니고는 아무도 다른 사람들을 고소할 수 없다. 또 그 소식은, 그 문제를 바로잡을 능력이 있는 자, 또 왕의 대사로서 그들을 징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보고되었다. 이 방백들은 이 비탄스러운 일을 바로잡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으나 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에스라에게 고하면서, 그의 지혜와 권위와 세력이 그것을 능히 해낼 수 있기를 바랬다. 자신의 힘으로는 사회적인 악습을 개혁할 수 없는 자들도 그것을 할 수 있는 자들에게 고함으로써 훌륭한 봉사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