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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표 시사 정론지 유로저널에 1년간 시리즈로 게재된 제임스강 목사의 칼럼 연재
12. 불행의 경계거리
“죽음 그 자체만큼 두려웠던 것은 그 역병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히스토리채널, 역사의 수수께끼 흑사병) 1327년 시작해 7,500만 이상의 중세 시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감으로 역사상 최대의 전염병이자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재앙을 가져다주었다는 흑사병(plague)은, 그 원인을 몰라 제대로 경계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최근 미세먼지의 위해성이 부각되어 미세먼지를 경계하며 대비하는 것과는 상반된 미개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겔 28:19_개역한글) 인류의 행복을 위하시는 하나님은, 천사장 루시퍼가 타락하여 악의 근원이 되자 그가 경계거리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 12:9)는 구절처럼, 인간을 꾀어 불행 속으로 이끌어가려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의 아내인 하와는 자신을 불행케 하려는 사단을 경계하지 않은 채 그의 꾀임에 넘어갔습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게 함으로 인류를 죄와 불행에 빠트리고자 한 사단의 속임수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로 인해 아담과 하와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행복의 터전을 잃었고, 죄와 불행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흑사병보다 더 무서운 영혼의 질병인 죄에 대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무지한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흑사병에 걸리면 절대로 건강하게 살 수 없었던 것처럼, 죄 가운데에서는 절대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에서 벗어나야 되고,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의 경계거리인 사단은 인간이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속이고 있습니다. 불행의 근원인 죄에서 눈을 떼게 하고 다른 것들을 불행의 원인이라고 속이며 헛된 수고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마치 흑사병의 원인을 몰라 수많은 헛수고를 하면서 죽어갔던 사람들과 같이 말입니다.
11. 행복한 마음이 정상
건강을 의미하는 영어 ‘Health’의 어원은 고어인 ‘Hal'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신체적으로 온전하다는 의미가 있는 ’Whole'에 해당하는 용어로서 ‘신체 상태가 질병이나 고통 없이 정상적으로 양호하다’는 뜻입니다. 즉, 정상적인 몸은 건강한 몸이기에, 몸의 어딘가에 통증이 있으면 누구나 몸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 몸에서 벗어나고자 치료를 시도합니다. 그런데 정상적인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몸과 마찬가지로 건강한 마음이 정상적인 마음으로, 마음의 질병인 우울증이나 절망 등이 없는 행복한 마음입니다. 성경의 핵심 스토리는 누가복음 15장인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받은 후 아버지를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성공을 위해 나갔지만 결국 쫄딱 망한 둘째 아들은 비참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과 아버지 안에서 풍족하게 살아가는 품꾼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너무나 기뻐하며 돌아온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풉니다. 하지만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맏아들은 그 사실을 알고는 매우 화를 냅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가 기뻐하고 있었지만 맏아들은 기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때 아버지는 맏아들에게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 15:32)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맏아들이 화를 내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어떤 조건이 아니라 무엇을 마땅히 여기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불행 속에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불행을 마땅히 여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화를 내는 것을 마땅히 여겼기에 분노 속에 머물렀던 맏아들처럼, 불행한 마음을 정상적으로 여기기에 불행 속에 있는 것입니다. 불행한 마음을 정상적으로 여기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행복한 마음이 건강하고 정상적인 마음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불행한 마음은 병든 마음으로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되는 비정상적인 마음이며, 오직 행복한 마음만이 정상적인 마음인 것입니다.
10. 행복의 터닝 포인트
인도의 전설 중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한 생쥐가 고양이가 너무 무서워 고민하다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마술사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도움을 구했습니다. “마술사님, 저는 고양이가 너무 무섭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마술사는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는 생쥐를 불쌍히 여겨 생쥐를 고양이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된 생쥐가 다음날 또 마술사를 찾아갔습니다. “마술사님, 제가 고양이가 되고 보니 이제는 개가 너무 무섭습니다.” 그러자 마술사는 고양이가 된 생쥐를 다시 개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개가 된 생쥐가 다음날 또 마술사를 찾아간 것입니다. “마술사님, 개가 되고 보니 이제는 사자가 너무 무섭습니다.” 할 수 없이 마술사는 개가 된 생쥐를 사자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이제 동물의 왕인 사자가 되었으니 더 이상은 무서워하지 않겠지’ 하고 마술사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자가 된 생쥐가 다음날 또 찾아온 것이 아닙니까? “마술사님, 제가 사자가 되고 보니 이제는 사냥꾼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덩치 큰 사자가 되어서도 여전히 두려움 속에 있는 생쥐를 어이 없이 쳐다보던 마술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너는 몸은 사자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생쥐의 마음이구나. 그러니 다시 생쥐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 결국, 생쥐는 원래의 모습으로 바뀌었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 속에서 살면서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위치나 조건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더 높은 위치, 더 좋은 조건 등 외부 형편의 변화가 행복으로의 터닝 포인트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행복의 터닝 포인트는 내부 곧 마음의 변화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는 예수님의 첫 가르침에서,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인데, 여기서 메타(Meta)는 ‘교체’를, 노이아(Noia)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즉, 마음의 교체인 회개로 인해 영원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행의 마음으로 형편만 바꾸는 것은 생쥐의 마음으로 사자가 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9. 위장된 불행의 씨앗
“미투 가해자부터 사망까지, 비참한 인생史”(매경미디어 MK스포츠 2018. 3. 9) 최근 한국 사회에 들불처럼 번지는 운동이 있습니다. 바로 미투 운동(Me Too Movement)입니다. 이는 원치 않는 성적(性的)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고발하는 운동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은 어떤 위치에 있든지 한순간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바로 위의 기사 제목과 같이 가해자로 지목된 한 유명 배우의 자살입니다. 이처럼 피해자는 물론이고 많은 이들에게 아픔을 주는 불행의 씨앗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불행의 씨앗이 처음에는 불행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미끼에 감추어진 낚시 바늘이나 수익을 약속하는 사기꾼의 미소에 가려진 검은 속내와 같이 정체를 위장한 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불행의 씨앗을 심게 되고 결국 그로 인해 불행한 결과를 맛보는 것입니다. 사람인(人)을 살펴보면, 왼쪽의 긴 막대기와 오른쪽의 짧은 막대기가 서로를 지탱하며 함께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즉, 왼쪽 막대와 같이 위의 사람도 있고, 오른쪽 막대와 같은 아래 사람도 있지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입니다. 만일 위의 사람이 아래 사람을 짓밟는다면, 아래 사람이 먼저 피해를 입지만 결국은 자신도 넘어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신을 위하고자 하는 이기심은 위장된 불행의 씨앗입니다.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은 자신의 저서에서 리더로 성장한 사람은 ‘높은 기둥 위의 거북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 스스로 기둥 위에 올라가지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올라간 거북이를 잊지 말고 주위 사람들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기록된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역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불행의 씨앗인 이기심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인을 자신과 같이 대하는 마음은 모두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비롯된 진정한 행복의 씨앗입니다.
8. 행복의 고리
“함께 마음을 나눠요. 그대가 없다면 무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도 밤하늘의 모든 별을 다 가져도 행복할 수 없어요. 황금의 탑도 원하지 않아요. 온 세상이 내 손에 다 들어와도 행복할 수 없어요. 그건 결코 온전한 행복이 아니죠.” 위는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개봉된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에서 유럽 최고의 오페라 가수로 등장하는 여배우가 부른 ‘네버 이너프(Never Enough)’란 노래의 가사입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온 세상을 가져도 행복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행복의 연결 고리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의 형성입니다. 지난 2017년 1월 16일, 영국의 더 타임즈는 ‘메이 영국 총리가 크라우치 체육·시민사회 장관을 외로움 담당 장관으로 겸직 임명했다’는 기사를 냈습니다. 외로움 담당 장관은 ‘항상 외로움을 느낀다’는 900여만 명의 영국인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생겨났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외로움은 매일 15개비의 담배를 피우는 것만큼 해로운 데다가 치료를 위한 비용은 매년 3조 7천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행복 전도사’로 알려진 레오 보만스는 전 세계 100명의 석학과 행복 전문가들로부터 행복에 관한 자료를 모아 <세상 모든 행복>을 발간했습니다. 그는 가장 먼저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페터슨에게 “인간은 혼자서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자 페터슨은 단호하게 ‘No'라고 대답하며 “행복에는 반드시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영혼의 행복은 반드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참된 행복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행복의 길잡이인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하면서 더불어 함께하는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하나님을 향해 등진 채로는 하나님이 인류를 위해 준비하신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7. 행복의 소통
‘Why Cry'라는 아기 울음 분석기가 있습니다. 아기가 울 때 왜 우는지를 몰라 엄마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스페인에서 발명을 했다고 합니다. 아기가 울 때 이 기계를 갖다 대면 ‘배고픔, 졸음, 귀찮음, 심심함, 짜증’ 등 5가지로 표시가 되어 신속히 아기의 요구를 해소하여 울음을 그치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이처럼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불행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란 내용이 나옵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 는 뜻으로 몸의 구조와 고통의 원인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은 혈관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그 길이가 무려 지구의 3배인 12만km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또한 혈액의 이동 속도는 총알의 7배에 달하여 단 20초 만에 혈관을 모두 통과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혈액의 이동이 초고속인 것은 60조개나 되는 세포에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혈액이 잘 흐르지 않아 세포에 영양과 산소가 공급되지 못하면 통증과 질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의학의 침술은 막힌 곳을 뚫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막힌 곳만 뚫어지면 자연스럽게 치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양 의학에서도 “모든 병은 근본적으로 정체(停滯)이며, 모든 치료는 근본적으로 순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프다는 것은 순환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인간 관계에서의 정신적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 사이, 친구 사이, 부모와 자식 사이, 상사와 직원 사이 등 서로의 관계에서 소통이 되지 않으면 어려움이 찾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미국의 북한에 대한 해상 차단도 강력한 제재인 교류 차단으로 북한 정권에 고통을 가함으로 핵 개발을 포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혼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성경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렘 2:19)고 하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영혼의 불행임을 명백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6. 행복의 단계
“욕구는 인간의 행동 요인으로 낮은 단계에서부터 충족되어 높은 단계로 성장해간다.”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1943년에 발표한 ‘인간의 동기와 성격’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위와 같은 욕구 단계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안전, 애정소속의 하위 3단계 욕구와 존경, 자아실현의 상위 2단계 욕구로 나누었습니다. 이는 최초로 체계화된 욕구 이론으로 심리학, 마케팅, 조직론 등 현대의 여러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욕구들을 모두 충족시켜도 온전한 행복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들을 모두 충족시켰던 사례는 고대 로마 귀족들과 솔로몬 왕을 들 수 있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천년 동안이나 세계 문명의 중심지의 지배자였던 로마의 귀족들은 원하는 욕구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갖 산해진미와 수많은 쾌락을 탐닉했던 로마 귀족들의 화려함과 사치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가 있지만, 그들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스라엘 3대 왕 솔로몬 역시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전 2:10)라고 하며 모든 쾌락을 누려보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그 모든 수고의 결과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이는 인간 욕구 단계의 한계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살전 5:23)이라고 하면서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몸과 혼과 영으로 구성되어 몸의 욕구와 혼의 욕구와 영의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단계인 몸의 욕구는 몸의 쾌락을 위한 것이고, 중간 단계인 혼의 욕구는 애정, 존경, 자아실현 등 정신적인 쾌락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높은 단계인 영의 욕구는 불완전한 세계가 아닌 영원한 세계에 대한 욕구로 온전한 행복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의 모든 욕구를 누려도 영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기에, 인류의 행복을 위한 성경은 행복의 마지막 단계인 영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길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행복의 기초
“행복이란 ‘집과 자동차 또는 전자제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얼마나 만족할 수 있느냐'가 행복의 열쇠이다.” 위는 유럽 신 경제 재단(NEF)의 2010년 국가별 행복지수 조사에서 국민의 97%가 행복하다고 대답함으로 1위를 차지한 부탄의 국가 정책 담당자가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부탄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로 널리 알려져 왔는데, 어떻게 국민소득 2천 달러도 되지 않는 가난 속에서도 국민들이 행복해할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민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 정책을 실시해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표어를 내세우며 범국가적으로 경제 성장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이제는 국민소득 2만불의 경제 부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복지수는 2010년 조사 당시 143개국 중 68위에 불과했습니다. 부탄보다 10배가 넘는 국민소득을 가졌지만 훨씬 더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행복보다 경제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탄은 1976년 국민총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라는 개념을 세계 최초로 발명하여 국가 정책에 도입했습니다. 결국, ‘콩 심은 데에 콩 나고 팥 심은 데에 팥 난다’는 옛 속담과 같이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자 노예해방의 업적을 이룬 링컨은 “대부분의 사람은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제26대 미국 대통령인 루스벨트가 “링컨은 성경과 함께 숨 쉬고 성경과 함께 산 사람입니다.”라고 표현했듯이, 링컨은 인류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 성경에 의해 마인드가 형성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 7:6)고 하며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가치를 모르는 자는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링컨도 행복에 대해 얼마만큼 마음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행복해지길 원하면 부탄처럼 행복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특히, 완전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이 제시하는 행복의 길에 주목하는 것이 행복의 기초입니다.
4. 불행의 마인드
“전쟁처럼 악하고 소름끼치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작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불행을 주었던 때는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5대양 6대주에 걸쳐 전쟁이 일어난 이 기간 동안 인류가 맛볼 수 있는 불행은 모두 맛보았을 것입니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전쟁으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사망을 당한 사람들의 수만해도 무려 5,000여만 명이나 될 정도였습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죽은 한 군인의 품속에서 발견된 라이터에 ‘여긴 지옥이야’라는 글씨가 새겨졌던 것처럼, 한 마디로 인류 역사상 가장 불행했던 때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이렇게 어마어마한 불행은 시작되었을까요? “인종적으로 우월한 강자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가 그 과업을 떠맡아야 하는 것이다.”(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 독일을 지배했던 마인드는 당시 독일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나찌 총통 히틀러의 마인드였습니다. 히틀러의 마인드가 담긴 그의 자서전인 <나의 투쟁>은 당시 전 독일의 가정마다 보유하고 있었는데, 자기 민족만을 위한 마인드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 마인드에 지배를 당한 독일은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불행한 전쟁을 일으켰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으며, 종말에는 자신들 역시 어느 때보다 비참한 불행을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흔히 그의 자서전을 <악마의 책>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외에도 2천여만 명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숙청한 구 소련의 스탈린이나 난징 대학살 등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일본 군국주의자들 역시 같은 마인드를 가졌습니다. 이 마인드는 자기만을 사랑하는 ‘자기 애(愛)’에서 시작됩니다. 성경은 자기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딤후 3:1,2) 즉, 자기를 사랑하는 마인드는 진정으로 자기를 위해주는 행복의 마인드가 아니라 실상은 다른 사람들은 물론 자신도 고통으로 인도하는 불행의 마인드인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마인드의 정체를 알지 못하기에 쉽게 이 불행의 마인드에 잡힙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이것을 알라’고 명백히 경고한 것입니다.
3. 행복의 의미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견해는 ‘행복은 욕구가 충족되어 만족을 느끼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욕구입니다. 욕구는 ‘무언가를 갖고자 원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옛날에 건망증이 심한 선비가 있었는데, 자기 스스로도 건망증이 심한 줄을 알기에 길을 나설 때면 담뱃대를 꽉 붙잡고 흔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길을 걸으면서 담뱃대 쥔 손이 뒤로 가면 “어, 내 담뱃대!” 하며 얼굴이 일그러졌고, 다시 손이 앞으로 나오면 “아, 여기 있네!” 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이 선비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마음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욕구를 가지고 살면서 자기 원함대로 이루어지면 행복해하다가도 원함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행해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그리스 철학자 메네데모스는 “원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커다란 행복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행복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영국의 철학자인 러셀은 “인간의 행복의 원리는 간단하다. 불만에 자기가 속하지 않으면 된다. 어떤 불만으로 해서 자기를 학대하지 않으면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이들은 공통적으로 욕구와 원함이 없어야 행복하다고 한 것입니다. 사실 욕구와 원함이 없으면 불만도 가질 수 없고 불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욕구와 원함이 없는 마음은 행복한 마음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세상에는 찾기 어렵지만 성경에는 이런 사람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다윗이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영문으로는 “I shall not be in want” 직역하면 “나는 원함이 없으리로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 비결이 성경에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행복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은 인류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행복의 나침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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