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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참된 교회의 기초
[찰스 스펄전 1879년 9월 14일 주일설교 발췌]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건물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기초가 관건입니다. 어떤 건축가가 아무리 빠르고, 솜씨 있게 건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기초가 부실하게 되었다면 그는 엉터리 건축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천히 그리고 힘들게 건물을 짓더라도 기초가 튼튼하다면 그는 자랑할 만한 건축가인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초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이라 할지라도 기초작업이 부실하다면 무너져 버립니다. 기초가 불안전한 건물은 높이 세우면 세울수록 그만큼 빨리 무너져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있어서 기초가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에 대해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상부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취향이나 판단에 의지할 수도 있겠지만, 기초는 유일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또한 건물의 상부 구조에 있어서는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기초작업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기초는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사 28:16)라고 말씀하신 불변의 하나님께서 놓으셨기 때문에 영원히 불변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의 마음과 삶이 똑같은 형태와 스타일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고의 건축가들을 모아 놓는다 하더라도 그들 간에는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고전 3:11) 여러분은 상부구조에 관해서는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기초에 관한 한은 일치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극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느니라.”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교사들이 서로 다른 기초를 놓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없으며, 얄팍한 속임수를 부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를 기초와 초석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 깊이는 무한하여서 모든 사물의 본성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그는 기초로 예정되었기 때문에 그 이외에는 어떠한 기초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잠 8:23) 세상에는 교회라고 불리는 것이 많이 있지만, 오로지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만이 참된 교회입니다. 어떤 공동체, 모임, 성직자단, 교파, 법인체가 자신을 교회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제 아무리 사람이 많고, 오래되고, 재산이 많고, 지식이 높고, 자랑할 것이 많고, 견고하고, 유력하고, 독보적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주 예수님이 첫째이며, 최고이십니다. 그의 백성은 그분께서 몸소 선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선택하여 백성으로 삼으시는데, 그리스도와 무관한 자를 백성으로 삼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특별한 재산이 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관계하여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택함을 받을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영생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영혼도 택함을 받았다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백성들의 머리가 되시고 대표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원한 뜻과 분리된 하나님의 교회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기초는 가장 먼저 놓여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먼저 놓여져야 합니다. 영원한 축복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서는 결코 택함을 얻었다 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기초는 모든 것을 지탱해 줍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탱해 주시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 이외의 것에 의지하여 구원과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진리입니다. 구세주는 교회의 초석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유일한 기반이시며,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는 유일한 대들보입니다. 교회는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불멸하심에 의지하여 하루 하루의 생명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으며,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의 백성을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에 의지하여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천상과 지상의 모든 권능이 그분께 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만방에 나아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돌아가신 그리스도에 의지할 뿐만 아니라, 영광 받으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 통치하시며, 곧 흩어진 자들을 불러모으셔서 그 중에서 지배하실 그리스도께 또한 의지해야만 합니다. 참된 교회는 포도나무와 같이 오직 줄기가 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만 수액을 공급받아 가지를 살게 합니다. 다른 집회는 인간의 위대함에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교회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도움을 얻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는 기초선에 따라야만 하듯이 모든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지하여 세워져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과 명령을 최선의 지혜로 알고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곧 교회의 법입니다. 교황과 종교회의의 법령, 총회나 장로회의 또는 각종 집회의 결의, 그리고 개개인들의 법령 등은 제 아무리 훌륭하고 또 한번에 다 모은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법과 다르다면 그것들은 공허한 바람이나 휴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손상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명할 때에, 우리에게 명한대로, 우리에게 명한 것을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나 왕이라 할지라도 교회 안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오로지 그리스도께서만이 지배하십니다. 만일 교회에 그리스도에 기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위대한 건축자이신 하나님의 계획을 망치는 것이며,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집을 손상시킬 뿐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한마디도 빠짐없이 모두 기초가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늘 하늘나라에 거하며,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 후나 마찬가지로 늘 같으시기 때문에 주님의 권위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충실히 따르는 교회는 견실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과 권위를 벗어나는 교회는 기초를 잃게 되어 교회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건축에 있어서는 기초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듯이, 참된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가옥의 경우에 창문 하나쯤 없어지고, 문을 폐쇄하고, 지붕 일부를 옮긴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은 가옥일 수 있지만, 기초가 없어져 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옥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초와 초석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없어져 버린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는 설교는 사기가 됩니다. 만일 그리스도는 뒷전에 쳐박아둔 가르침에서 기쁨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그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시작이자 끝이신 분입니다. 참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충실히 섬깁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있어서 전부입니다. 그들은 목사와 전도사에 대해서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전 3:5)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진리를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계셔야 할 곳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적 그리스도입니다. 참된 교회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지식과 웅변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설교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한 가운데에 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참된 배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주님께서 모욕 당하는 것을 보고도 만족할 수 있는 교회라면,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순결한 배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시거나 결합의 끈이 되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인간들끼리 서로 결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희망의 근거와 기초가 되시는 분입니다. 신자들과 목사가 결합했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성도들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것은 몹시 좋은 일이며, 목사와 성도들 사이가 완전한 사랑으로 충만되어 있다는 것은 몹시 유익한 일이지마는, 그 관계는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만의 사이에서는 어떠한 영광도 있을 수 없으며, 거기에는 맹목적으로 숭배해야 할 대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선생의 이론이나 견해에 의지하여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에 기초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에 기초해서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루터나 칼빈이나 웨슬레 혹은 휘트필드 등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는 자들로 구성될 때만 참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주님만 계셔야 합니다. 물론 목사, 장로, 집사, 교사, 복음 전도자도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는 귀한 돌들이지만,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것은 기초가 없는 것과 같아서 결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만 나아가서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있어야만 교회가 바로 세워질 수 있으며, 거룩한 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배태시키는 씨앗이시며, 교회라는 가지가 뻗어 나오는 줄기이시며, 교회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는 머리이시며, 교회를 먹이는 목자이시며, 교회를 통솔하는 장군이시며, 교회의 남편이 되십니다. 즉, 그리스도는 당신의 피로 사신 교회의 만유 속에 계시는 만유이십니다.
5. 믿음과 은혜, 무엇이 우선인가
[찰스 스펄전 설교집 중, 1915년 10월 7일 발행]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엡 2:8) 오늘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전에 먼저 우리 구원의 근원인 '하나님의 은혜'를 주의해 보아야 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기에 범죄한 인간이 용서를 받고, 회심을 하고, 정결케 되고, 구원을 받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사람 안에 구원받을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 안에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선하심, 자비로우심, 불쌍히 여기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잠시 샘의 근원에 머물러 계십시오. 생명수의 정결한 강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을 바라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깊은지요! 누가 능히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다른 속성들도 그렇지만 이 은혜 역시 무한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충만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이름(God)을 보십시오. 선하심(good)을 줄인 내용이 아닙니까! 하나님 안에는 무한한 선함과 사랑이 있습니다. 인간이 진멸되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자비가 무궁' 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와서 용서를 받는 것은 '여호와의 긍휼이 무궁'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믿음의 근원인 것은 잊은 채 믿음이 구원의 수단인 것에만 마음을 집중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역사한 결과입니다. 어느 누구도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 결과입니다! 은혜는 믿음과 구원의 처음과 마지막 동인(動因)입니다. 믿음은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가 사용하는 기계의 중요한 부속으로서 중요할 뿐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지만,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다!" 이 말이 마치 천사장의 나팔소리처럼 울려 퍼집니다. 믿음은 통로와 수로입니다. 은혜는 샘이요 물줄기입니다. 자비라는 물줄기는 믿음이라는 수로를 통해 흘러서 인간의 목마름을 해결합니다. 이 통로가 망가지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로마에는 멋진 수로가 많았지만 안타깝게도 대개 부서지고 망가져서 시내로 물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물을 잘 전달하려면 수로가 잘 관리되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도 진실하고 건전하여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때 믿음은 우리 영혼에 자비를 전하는 통로가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믿음은 통로와 수로이지 샘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비롯된 것처럼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한, 믿음을 우리 구원의 근원과 별개로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우리의 생명은 '예수를 바라보는' 데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믿음을 바라보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우리에게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그 능력은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믿음이 의지하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은혜는 기관차이고, 믿음은 기관차와 화물칸을 연결하는 체인입니다. 영혼을 실은 화물칸은 체인을 통해 강력한 힘으로 끌어주는 기관차와 연결됩니다. 믿음의 의는 믿음의 도덕적 탁월함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붙들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영혼 안의 화평은 우리 자신의 믿음을 묵상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화평이신 주님께로부터, 우리의 믿음이 만지는 그분의 겉옷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때 화평이 주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오게 됩니다. 이 통로를 잘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4. 죄로부터의 구원
[찰스 스펄전 365 묵상집, Morning and Evening 2월 8일 오후]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지옥에서 건짐을 받아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는 구원의 한 결과입니다. 하지만 구원의 은혜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하나의 십일조(十一條)와 같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람들을 다가올 진노에서 구속하신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분은 그들 자신의 죄로 인해 받아야 될 두려운 정죄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분의 승리는 그 정죄보다 더욱 더 완벽하여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로부터 능히 구원하십니다. 오! 우리의 가장 흉악한 적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지요!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사역을 하는 곳에서는, 사탄이 자신의 보좌로부터 쫓겨나 더 이상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만일 죄가 그의 육신을 지배하고 있다면, 그는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영혼이 영광 속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죄가 온전히 쫓겨나지 않고 우리 육신에 존재할 것이지만, 결코 지배권은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는, 지배권 - 하나님이 심어주신 새 법과 새 영을 대적하는 욕구 - 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쓸 것입니다. 하지만 결코 우리 본성의 절대 군주가 될 만큼 힘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의 주인이 되고, 죄는 치명적으로 타격을 입고 굴복될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사자(Lion)가 승리하고 용은 지배권으로부터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에게는 죄가 굴복되어 있습니까? 만일 당신의 삶이 성별되지 않았다면 당신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은 것이고, 당신의 마음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구주께서 당신을 성별케 하지 않고, 당신을 거듭나게 하지 않고, 당신이 죄를 미워하고 거룩함을 사랑하지 않게 하셨다면, 당신 속에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 구원 받지 못한 이들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못하는 은혜는 아무 가치 없는 위조된 은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 속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십니다.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딤후 2:19) 만일 죄로부터 구원 받지 못했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포함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까?
3. 아는 것과 믿는 것
[찰스 스펄전 1866년 9월 30일 주일설교 발췌]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딤후 1:1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본문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내가 안다’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내가 안다’라고 말하고 있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리스도에 대하여 들어온 분들이라면 그분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전혀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분에 대하여 아는 것과 그분을 아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약에 대하여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이 치료할 수 있는 병에 걸려 죽을 수 있습니다. 자유에 대하여 아는 죄수가 지하 감옥에서 파리하게 죽어갈 수 있습니다. 여행자가 소망했던 자기 집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도 한 밤중에 숲 속에서 홀로 버려져 죽어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업가들이 은행의 막대한 돈에 대하여 알고 있지만 파산할 수 있습니다. 뱃사람들이 항구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도 암초 위에서 표류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의 모든 말씀에 대하여 해박한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의 어느 부분에 대한 질문을 받아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에 대하여 잘 알고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속에 소유하지 않고 머리 속에 쌓아둔다면 조금의 유익만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우리의 가장 크고 높은 갈망입니다! 단지 성경 본문을 아는 차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믿음의 훈련 또한 이와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는 유일한 믿음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뿐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교리를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악한 영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자일 수 있습니다. 저는 악한 영도 신학적 지식에 있어서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도 분명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악한 영도 진리를 믿고 두려움에 떱니다. 어떤 이들은 목회자에 대해 맹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너무나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목회자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 앞에서 재어볼 것을 권고합니다. 만일 그것이 성경적이지 않다면 쓰레기처럼 당장 내어 버려야 됩니다. 목회자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살펴보지 않으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는 경고의 말씀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영국에는 자신을 위해 이웃과 친구들이 자기 종교를 따르기를 바라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청색 또는 푸른 색, 혹은 자주 빛 옷을 입는 것과, 낮에도 교회에서 촛불을 밝히고 코가 얼얼할 정도로 강한 향을 피우는 예식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모든 예식들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자신들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거짓된 만족감에 젖어 있습니다. 또한, 많은 곳에서 자기 의존적인 교리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자기 의존은 항상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파멸로 이끕니다. 자기의 의를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빛을 위해 밤이 자기의 어둠을 의지하는 것이며, 충만함을 위해 공허함이 자기의 부족함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의로 하늘을 향한 길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이 떠돌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을 집어 넣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이 오히려 여러분을 파멸시킬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기에 구원받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영혼을 구원하는 참된 믿음은 ‘온전한 신뢰’라는 본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영혼의 절대적인 안식과 자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러한 거짓된 속임수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생명력 있고 핵심적이며 진정으로 중요한 유일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습니까? 그분만을 붙잡고 있습니까? 그분을 잘 알고 있습니까? 그분께서 구원의 모든 것이 되시며, 여러분이 갈망하는 모든 것이 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 경고의 메시지를 마음 속 깊이 엄숙하게 새기십시오. 여러분이 모든 인간의 유일한 구원자이신 그분을 믿고 참된 안식 가운데 거하지 않고 있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알고 있든지 여러분은 여전히 무지한 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무엇을 믿고 있든지, 여러분은 정작 믿어야 할 것을 여전히 믿고 있지 않는 불신자인 것입니다.
2. 기쁨의 섬김
[찰스 스펄전 1867년 9월 8일 주일설교 발췌]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시 100:2) 많은 사람들이 신앙과 기쁨이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것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일요일에는 교회에 가야된다는 통념으로 주일 예배에 참석합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내는 세금처럼 생각합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에는 기쁨이 자리할 자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기쁨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그분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섬김은 경배의 형식은 갖추었어도 생명은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보좌를 멋지게 장식할 종들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사랑의 나라의 주인으로서 그의 종들에게 기쁨의 옷을 입혀놓았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도 탄식이 아니라 찬송으로 섬깁니다. 불평이나 한숨은 그들의 지위에 반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드려지지 않는 순종 역시 불순종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랑이 빠진 채 드리는 것이라면 그 제사는 거부될 것입니다. 자신은 예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불평하는 마르다와 같이 되서는 안 됩니다. 흔한 섬김보다 적은 섬김이 더 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눅 15:29)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하지 못한 맏아들과 같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기쁨의 섬김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에 참된 섬김입니다. 성도에게서 기꺼이 드리는 기쁨을 제거해 보십시오. 그것은 그의 신앙의 주춧돌을 제거해버린 것과 같습니다. 기쁨은 우리의 힘의 원천입니다. 주님을 기뻐할 때 우리는 강합니다. 또한 기쁨은 어려움을 제거하는 역할도 합니다. 기쁨과 섬김의 관계는 윤활유와 차바퀴의 관계와 같습니다. 윤활유가 없으면 바퀴의 축이 쉽게 열을 받아 사고가 일어납니다. 만일 우리의 바퀴에 기쁨이라는 윤활유를 치지 않으면 우리 영혼은 지치고 무디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데 기쁨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계명을 따라 걷게 하소서. 그것은 즐거운 길이옵니다.” 당신이 신자라면 반드시 “나는 진정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가?” 라고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마음을 꺾고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종교로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즐거움과 기쁨의 종교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선하신 주님을 기쁨으로 섬기는 것이 참된 신앙임을 선포합시다.
1. 거듭남, 확실합니까?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 저자 : 스테판 차녹(Stephen Charnock) - 영국의 청교도 목회자로 청중들로부터 하나님의 손이 빚은 설교자로 불리움, 1628년 런던 출생, 1642년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거듭남, 1649년 옥스퍼드 대학 특별 연구원으로 재직, 1655년부터 목회와 함께 신앙 연구와 집필에 열중, 1680년 사망. 대표적인 저서로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 <거듭남의 본질> <하나님을 아는 지식> 등이 있음. * 출판사 지평서원 서평 (발췌) - 스테판 차녹의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는 교회 역사상 중생 교리를 다룬 책들 중 최고봉으로 알려져 있다. ... 거듭남의 문제를 새삼스레 이야기하는 책은, 우리 시대에는 사실 인기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 거듭남의 문제를 예수를 처음 믿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진리요, 처음 예수 믿을 때 있게 되는 어떤 경험 정도로 여기며 이미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슬프게도, 거듭났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들에게서 거듭난 자의 상태와 증거를 비례적으로 볼 수 없음이 사실이다. 사실 우리는 '거듭남'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 니고데모같이 영민했던 사람이 주님께로부터 거듭남의 교리를 배웠던 것처럼 한국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은 거듭남에 대해 확실한 자기 진단을 해야만 한다. * 목차 (요약정리)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죽었기에 다시 태어남이 필요합니다. 중생 없는 자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의 중생 때문이며, 중생이 필수적임을 알리려고 성령께서 일하십니다. 중생은 복음적 상태와 복음적 의무를 이행하는 데에 꼭 필요합니다. 중생이 없는 자의 봉사와 섬김은 아무런 값어치가 없습니다. 중생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통이 불가능하며, 하나님의 양자가 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부패했기에 새로운 본성이 필요합니다. 교정으로는 안 됩니다. 전적으로 새로 나야만 합니다. 중생의 교리에 무관심함은 비참한 일입니다. 중생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도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자기 기만의 수레를 타고 지옥으로 가지마십시오. 자신의 중생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중생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에게 질문하십시오. 절대적으로 중생을 구하되 지금 당장 구하십시오.” * 본문 (발췌) “인간이면 누구나 이성적인 기능인 영혼(soul)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을 결여하고 있는 존재는 사람일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면 본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결여하고 있는 사람을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다운 특성이 없으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다운 특성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으면 무조건 유대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위탁받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다운 본성을 구비한 사람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원형과 가장 가까운 작품을 탁월하다고 말합니다. 그처럼 영혼의 행복이란 그 참된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점 없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 원래 만들어졌던 그 목적에 마땅히 종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사람의 최고의 완전함이었습니다.” * 추천의 글 (발췌) - 당신은 진정으로 거듭났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그저 모호하게 얼렁뚱땅 어느 순간에 되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그 배경에는 살아 계신 삼위 하나님의 정확하고 완전한 사역이 있습니다. 바로 이 거듭남의 역사가 그러합니다. ... 우리는 거듭남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예수를 믿든 안 믿든 그가 알아야 할 것은 거듭남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그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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