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신문 칼럼 연재 (5.4 ~)
1965년에 창간되어 한국 교계의 대표적인 신문으로 자리매김한 ‘기독교신문’에
2022년 5월 4일부터 매주 본 연구소 소장인 제임스강 목사의 ‘행복신앙세미나’가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칼럼을 통해 많은 분들이 영원한 속죄를 통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성원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기독교신문에 게재된 칼럼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아래는 5월 4일자 첫 칼럼 내용 입니다.]
1.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주님의 은혜 가운데 행복신앙세미나를 연재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행복신앙세미나는 참되고 바른 신앙을 통해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세상이 주는 행복과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세상에서 행복을 맛보지만, 그것은 어떤 조건에 따라 주어지는 행복이기에 불완전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복은 번영신학이 추구하는 기복신앙과도 다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으로 완전한 행복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창 24:1)는 말씀처럼, 특정 조건이나 상황이 아닌 범사 곧 모든 일에 주시는 온전한 복인 것입니다.이 복을 얻게 되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 속에 언제 어디서나 기쁨을 맛보며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불행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중에도 상당수가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이 추구하는 불완전한 행복이나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이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본심을 정확히 알지 못하여 완전하신 하나님의 행복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유일한 책인 성경은 우리를 사랑하여 완전한 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이 분명하게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가장 먼저 복을 주셨고, 성경의 중심을 차지하는 시편도 “복 있는 사람”(시 1:1)으로 시작하며, 예수님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라고 하시며 복에 대한 말씀으로 가르침을 시작하셨습니다.이는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렘 29:11)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평안과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의 황태자인 찰스 스펄전도 “주님의 유일한 목적은 당신의 행복이다”(All of Grace)라고 한 것입니다.또한, 개혁 신앙의 구심점으로 체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소요리문답에서 첫째 질문인 인생의 목적에 대한 답변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었으며, 둘째 질문의 답변 역시 “성경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것은 신앙의 터와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었지만, 19세기에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정통 개혁주의 신앙이 퇴색되면서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으로 말미암은 참된 신앙이 희미해져갔습니다.그로 인해 신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점점 사라져갔고, 심지어 기독교인들조차 세상적인 축복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본주의에 입각한 번영신학이 일어나 잘못된 기복신앙으로 오히려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에서 더 멀어지게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께서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 10월에 종교개혁의 꽃을 아름답게 피웠던 종교 개혁자들과 믿음의 선진들의 발자취를 따라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에 초점을 맞춘 ‘Blessing of God Mission’을 영국에 허락하셨습니다.2019년부터는 한국에 ‘행복신앙연구소’ 라는 이름으로 상담소를 허락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특히, 유럽 대표 한인신문인 유로저널에 ‘행복나침반’ 칼럼을 연재케 하신 주님께서 이제 기독교신문에도 칼럼 연재를 허락하셨습니다.주님의 은혜 가운데 연재되는 이번 칼럼을 통해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아래는 기독교신문 첫 칼럼 스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