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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기독사이트인 갓피플에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연재된 제임스강 목사의 신앙 칼럼 ‘주만 바라볼지라’ 스토리
7. 눈 안에 있는 은혜
여러 해 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몹시 추운 겨울에 한 노인이 강을 건너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은 무릎 정도의 깊이였지만 군데군데 얼어 있어서 함부로 건널 수 없었습니다. 혹독한 추위 때문에 노인의 수염이 고드름처럼 얼어서 반짝였습니다. 춥고 지루한 기다림이 계속되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 속에서 노인의 몸은 점점 뻣뻣하게 얼어갔습니다. 그때 노인은 얼어붙은 길 저편을 질주해 오는 흐릿한 말발굽 소리를 들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말을 탄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말을 얻어 타면 쉽게 강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노인은 초조해 하며 몇 명의 신사들이 말을 타고 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첫 번째 사람이 앞을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도움을 청하려는 아무런 손짓도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지나가고, 이어서 세 번째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노인은 계속해서 가만히 서 있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사람이 눈사람처럼 서 있는 노인 앞으로 말을 타고 다가왔습니다. 신사가 가까이 오자 노인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 이 노인을 강 건너까지 태워다 주시겠습니까? 걸어서는 건너갈 수가 없군요." 말의 고삐를 늦추며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어서 올라타세요." 노인의 몸이 얼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신사는 말에서 내려 노인이 말에 올라타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노인을 강 건너로 데려다 주었을 뿐 아니라 몇 킬로미터 떨어진 목적지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작고 안락한 노인의 오두막에 도착했을 때 말에 탄 신사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습니다. "노인장,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말을 타고 지나 갈 때는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까이 가자 얼른 태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것이 무척 궁금하군요. 이토록 추운 겨울날 밤에 당신은 계속 기다렸다가 맨 마지막에 오는 저에게 말을 태워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만일 제가 거절했다면 당신은 그곳에 그냥 남겨졌을 것 아닙니까?" 노인은 천천히 말에서 내린 뒤 그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나는 말을 타고 오는 사람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 처지에 아무런 관심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태워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눈 안에는 친절과 자비심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친절과 자비심에 호소한 것입니다." 신사는 노인의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해 주신 이야기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내 자신의 생각에 열중하느라 다른 사람들의 불행한 처지를 망각하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치고 미국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말을 몰고 백악관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온 땅에 심판이 임하던 그 날... 유일하게 생명을 유지한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그들과 홍수에 잠긴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들 자신에게 있는 조건에서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오직 은혜를 입었다는 한 가지 조건이 생명과 사망을 구분했습니다. 은혜를 입었다는 단 한 가지 조건이 말입니다. 이에 대해 킹제임스 버젼은 더욱 분명히 그 부분을 밝히고 있습니다.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genesis 6:8) 그대로 직역하면...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했다." 다시 말해 은혜는 발견한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은혜를 은혜로 여기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눈이 먼 그것이 바로 타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을 자세히 보십시오! 은혜를 베풀고자 안타까워하시는 그분의 본심이 보이지 않습니까?
6. 가필드 스토리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조용한 시골 마을에 한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큰 집과 넓은 농장, 그리고 많은 하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그의 외동딸이었습니다. 그는 딸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딸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정성 탓인지 딸은 곱게 곱게 자라갔습니다. 밝고 예쁘게 자라는 딸의 모습은 부자의 기쁨이었습니다. 딸의 웃음 속에서 부자의 행복도 자라갔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딸은 성숙한 소녀가 되었습니다. 마냥 재롱을 떠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아버지의 농장 나무 그늘 밑에서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우는 숙녀로 자라난 것입니다. '내 딸이 벌써 저렇게 아름답게 자랐구나!' 성숙한 딸의 모습은 아버지에게 새로운 기쁨과 함께 딸을 위한 큰 계획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 딸을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젊은이와 결혼시켜야겠다. 가장 큰 예식장을 빌려, 가장 멋진 드레스를 입히고 온 동네 사람들을 모아 가장 멋진 결혼식을 치러야겠다. 암 누구의 딸인데... 그래, 가장 큰 다이아몬드 반지도 손에 끼워줘야겠구나.' 딸의 행복이 바로 아버지의 행복이었기에 아버지는 딸을 위해 최고의 결혼을 시켜주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봐, 돈은 얼마든지 줄테니 훌륭한 젊은이를 찾아내게" "어떤 젊은이를 원하시는지요? 부자 어른" "최고의 젊은이어야되네. 어디 내놔도 최고로 뛰어난 청년 말이야!" 부자는 유명한 중매장이를 부른 후 신랑감이 될 훌륭한 젊은이를 찾아낼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신랑감을 찾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재산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부자가 바라던 최고의 신랑감은 쉽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우연히 마차를 타고 농장을 돌던 부자의 눈에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는 두 사람이 발견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있는 젊은이는 낮이 익지 않았습니다. '누구지 저 청년은?' 부자는 급히 옆에 서 있는 늙은 청지기에게 물었습니다. "이보게, 내 딸과 함께 있는 저 청년은 누구인가?" "예? 누구요? 아 저 젊은이요? 몇 달 전에 새로 들어온 짐이란 청년인데요. 한번 주인님에게 이야기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새 하인이 들어왔다고..." 부자는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어렴풋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 그래, 시골에서 한 청년이 와서 자기를 써 달라고 했지! 그럼 저 청년이 바로..." "예 저 청년입니다." "그래... 좀 어떤가?" "매우 성실하게 맡은 일을 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저 청년을 내 방으로 한번 불러오게" 부자는 청년과 함께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딸의 모습이 평소와 달리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왠지 마음에 걸리는 것입니다.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오, 자네가 새로 들어온 하인인가?" "예. 그렇습니다." 청년의 태도는 다른 하인들과 달랐습니다. 다른 하인들은 대부분 주인 앞에 오면 몸을 조아렸지만 청년은 자유롭고 당당했습니다. 부자는 천천히 아래위로 청년을 살펴보았습니다. 부자의 눈길 앞에서도 청년은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서 있었습니다. 굳게 다문 입술에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호기심을 가지고 하나씩 묻기를 시작했습니다. 고향은 어디며, 부모는 누구며, 학벌은 어떠한지를 물었습니다. 청년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나갔습니다. 부자는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실망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시골뜨기일 뿐이군, 그러니 남의 하인 노릇밖에 못하지...' 부자는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다는 표정으로 청년의 말을 끊었고, 곧 냉정한 얼굴로 엄히 이야기했습니다. "자네, 어제 오후에 보니 내 딸과 가깝게 지내던데 앞으로는 절대로 가깝게 지내지 말게! 그 아이는 곧 훌륭한 청년과 결혼해야 되니" 딸의 이야기가 나오자 청년은 잠시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곧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습니다. "주인님, 죄송한 말씀이지만, 따님과 저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사귀는 것을 허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뭐라고! 사랑하고 있다고!" 부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노한 얼굴로 청년을 노려봤습니다. "네 놈이 하인 주제에 감히 내 딸을 넘봐!" 부자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얼굴은 평안했습니다. 부자는 말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는지 문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청지기!" 곧 문이 열렸고 늙은 청지기와 하인들이 들어왔습니다. "저놈을 당장 쫓아내! 다시는 내 눈 앞에서 보이지 않도록 하란 말이야!" 하인들은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 망설이다 부자의 재촉에 못 이겨 청년의 팔을 붙잡았습니다. 청년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이 정 그러시다면 제가 스스로 나가겠습니다. 하지만 따님과 저는 순수하게 서로를 사랑했습니다. 주인님처럼 어떤 조건을 따지지 않고요!" 청년은 곧 짐을 챙긴 후 그곳을 떠났습니다. 부자는 청년이 머물던 곳의 물건을 남김없이 치우라고 했습니다. 청년의 자취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한 것입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부자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이 패었고, 기력은 쇠해졌습니다. 어느 날 부자는 낡은 창고를 살피러 들어갔습니다. 창고가 오래 되어 새롭게 지어야 된다는 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이 탓에 눈이 침침해진 부자는 눈을 비벼가며 창고 기둥들을 하나씩 살펴갔습니다. 얼마 후 글씨가 새겨진 한쪽 구석의 기둥이 부자의 눈에 띄었습니다. 오래되어 낡은 기둥에는 누군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부자는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제임스 ... A ... 가필드?” 놀랍게도 그 이름은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었습니다. 더욱 부자를 놀라게 한 사실은 그곳이 오래 전에 쫓아낸 짐이란 청년이 머물던 장소인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시며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요, 당신의 기뻐하시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오셨을 때 사람들은 영접치 않았습니다. 자신들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놀라운 축복을 준비하시지만, 외형적인 모습만 보는 우리의 눈으로 인해 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눈 앞에서는 히나님의 축복들이 '감추인 보화' 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눈이 아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5. 노신사와 흑인 소녀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불행한 시대가 있었습니다. 검고 거친 피부를 타고난 이들... 가난 속에서 이름도 모르는 질병으로 죽어갔던 이들... 그런 비참한 삶도 부족했는지 억센 백인들의 손아귀에 잡혀 고향을 등져야 했고, 이름도 없이 죽을 때까지 노예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순간부터 그들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부리는 짐승 그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온갖 수모와 모욕이 그들의 표정을 어둡게 만들었고 마음은 점점 일그러져 갔습니다. 행복, 소망, 사랑은 이들에게는 사치스런 단어였습니다. 팔리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만나는 장소... 노예 시장은 그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동물원의 원숭이 모양으로 서 있다가 누군가에게 선택되면 그의 노리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노예 시장에 한 흑인 소녀가 서 있었습니다. 이곳 저곳에 팔려다니면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흔적이 그의 굳은 얼굴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소녀의 눈은 전투에 임하는 군사처럼 기세등등했고, 누군가 건드리기도 하면 폭발할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때 한 노신사가 그곳에 왔습니다. 신사는 그곳을 조용히 한번 죽 둘러보았습니다. 한 발자욱 한 발자욱 조심스럽게 거닐던 노인의 발이 그 소녀 앞에서 멈췄습니다. 그리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이 소녀를 내가 사겠소!” “아! 이 애요. 그렇죠 몸종으로 쓰기에는 튼튼한 편이죠” 노예 상인의 말은 듣는둥 마는둥 노신사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상인에게 안겨주었습니다. 노예 상인은 만족한 얼굴로 소녀를 풀어주었습니다. “자, 이제 너는 내게서 벗어났다. 물론, 이 어른의 종인 것은 잊지 말아라!” 소녀는 노예 상인을 증오에 가득찬 눈으로 쳐다보면서 침을 탁 뱉았습니다. “아니 이년이! 어디에다가...” 채찍을 든 노예 상인의 손이 올라갔고 곧 내려치려는 순간, 신사의 지팡이가 가로막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자네의 종이 아니네! 이 아이는 내가 사지 않았나?” 신사의 말에 상인은 주춤했고, 그틈을 타서 신사는 아이를 얼른 데려갔습니다. 신사의 도움으로 매를 피했지만 소녀의 증오를 삭힐 수는 없었습니다. 소녀는 증오의 화살을 신사에게로 돌렸습니다. “이 영감탱이야,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고 해! 이제 지긋지긋하다. 나를 차라리 여기서 죽여라!” 소녀는 주먹짓까지 해가며 욕을 퍼부었지만, 노신사는 아무 말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길 모퉁이를 돌아서더니 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애야, 네 갈 길로 가거라.” 신사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으며 소녀의 표정이 순간 달라졌습니다. 당황한 얼굴로 신사를 바라보는 소녀를 향해 신사는 더욱 인자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네 맘대로 어디로든 가렴... 너를 풀어주겠다. 이제 너는 자유의 몸이야. 그 동안 얼마나 고생했니...”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습니다. 부드러운 노신사의 얼굴 앞에서 소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신사가 등을 돌리고 가려고 하자 소녀는 당황하며 신사의 바지를 붙잡았습니다. “주인님, 저를 데려가 주세요. 제발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소녀는 울먹거리다가 통곡하기 시작했고 어느 새 신사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저는 주인님의 종으로 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저를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준 적이 없어요.” 소녀는 자기가 있어야할 곳이 어디인지 알았습니다. 비로소 자기를 진정으로 위하는 주인을 얻게된 것입니다. 여기 또 한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꿈꾸기를 좋아했습니다. 혼자서 동화 속의 신데렐라도 되어보고 못된 계모도 되어보고, 늘 혼자 있을때면 동화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녀는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미래의 자기를 그려보았죠.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성숙하게 자란 소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 그렸던 자기와 지금의 자기 모습은 너무나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내 인생이 아닌데, 이것은 내가 그려왔던 내가 아니야...” 소녀는 그때부터 삶의 의미를 잃었습니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그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아침은 여전히 찾아왔고, 원치 않은 고통의 삶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죽지 못해 살아가던 소녀에게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소망 없이 살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수를 주셔서 그 갈한 목을 채우고 삶을 새롭게 바꾸셨던 나사렛의 예수... 그분께서 소녀를 찾아와 선한 이웃이 되어준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서 소녀는 비로소 삶의 의미를 찾았고, 자기를 구원해준 예수님 품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토록 원하고 바라며 얻기 위해 노력했던 행복이 예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손으로 행복한 인생을 가꾸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자기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출생도, 외모도, 이름도, 성격도... 그 어느 것도 원했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의 손에서 예수님의 손에 맡겨진 모든 것 중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이 있었나요?
4. 늙은 정원사의 꽃
오래 전 중국에 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왕궁을 아름답고 멋지게 꾸미는 일에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가꾸어진 왕궁 곳곳을 거닐면서 흡족해 했습니다. '정말 멋진 왕궁이야! 어떤 왕이 이런 훌륭한 왕궁을 가지고 있었나!' 특히 왕의 마음을 만족시킨 것은 주위 신하들의 아첨이었습니다. "임금님 정말 멋진 왕궁입니다. 모두가 임금님 덕분입니다." "임금님 때문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사는지 모릅니다." "임금님께서 덕이 있어서 나라에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런 소릴 들을 때마다 왕의 마음은 높게 높게 치솟았습니다. 그 후부터 모든 일들이 자신이 잘해서 되는 줄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궁궐 안에 꽃을 가꾸는 정원사가 새로 왔습니다. 늙어 기력이 부족했지만 그의 꽃을 가꾸는 솜씨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한 눈에 병든 화초를 가려냈고, 그의 손에서 시들던 꽃이 생기를 얻었습니다. 하루는 뒷짐을 진 채 왕궁을 거닐던 왕이 정원까지 왔습니다. 마침 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꽃 한 포기를 돌보느라 마음을 쏟고 있는 정원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곧 왕이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살아나겠느냐?" "새벽에 맑은 이슬이 내렸고, 지금은 따뜻한 햇볕이 애쓰고 있으니 소생할 것입니다." 정원사가 공손히 아뢰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왕의 귀에는 거슬렸습니다. 신하로부터 그런 투의 대답은 처음 들은 탓이었습니다. "예, 임금님 덕분입니다. 이렇게 몸소 나오셨으니 곧 되살아나고 말고요." 여태까지의 정원사들은 으레 이런 대답을 했기 때문입니다. 왕은 기분이 언짢았지만 꾹 참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 뒤 왕이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정원을 거닐다가 또 정원사와 마주쳤습니다. "예쁜 나비들이 많아졌군." "예. 향기를 풍기는 꽃이 늘어났으니까요." "못 듣던 새 소리도 부쩍 늘었어." "그만큼 숲이 우거졌지요." 그러자 왕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졌습니다. 얼굴도 붉으락푸르락했습니다. "내 덕분이 아니란 말이렸다!" "예?" 정원사는 비로소 고개를 들고 의아한 눈길로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뒤따르던 신하들도 덩달아 눈 꼬리를 치켜 올리더니, 정원사를 향해 삿대질을 해댔습니다. "성은도 모르는 저 늙은이를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사옵니다." 그러자 잔뜩 화가 난 왕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괘씸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당장 옥에 가두어라!" 곧 군졸들이 달려와 정원사를 꽁꽁 묶었습니다. "내 덕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나 어디 한 번 보자. 감옥에서 꽃 한 송이만 피워 내면 풀어 주겠다." 정원사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하시오면, 흙 한 줌만 주십시오." "오냐, 네 원대로 흙을 주마. 감옥에 가 있거라." 정원사는 곧 감옥으로 끌려 갔습니다. 잡혀가는 정원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임금님 어찌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저 정원사의 솜씨가 좋던데 흙을 주면 혹시?" 신하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왕은 야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볶은 흙을 주란 말이다." "예? 왜 볶은 흙을?" "혹시 꽃씨가 숨어 있는 흙을 주면 안 되니까." "과연 훌륭하십니다." 신하들은 저마다 왕의 생각을 지혜롭다고 칭송했습니다. 정원사가 갇힌 감옥에는 높다란 곳에 조그만 창이 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답답한 감옥의 숨통과도 같았습니다. 그 창을 통해 하루에 한 차례씩 손바닥 만한 햇살이 들어왔습니다. 그때마다 정원사는 한 줌의 볶은 흙이 담긴 종이를 창틀에 올려 놓고 그 햇살을 고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가끔 물 한 모금을 남겨 그 흙에 뿌려 주었습니다. 그러기를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계속되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년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삼 년을 훌쩍 넘긴 어느 이른 봄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여전히 햇살을 받던 정원사는 흙 가운데 찍힌 연두색 작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갓 움트기 시작하는 작은 꽃씨였습니다. 그 순간, 정원사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리고 이내 굵은 방울이 되어 꽃씨 위에 떨어졌습니다. 기적적으로 바람에 실려 조그만 꽃씨 하나가 창문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아무렴, 사람이 아무리 뒤축 들고 두 팔을 쳐들어 막는다 해도 그 높이 위로 지나는 바람은 어쩔 수 없지. 창문으로 들어오는 저 따사로운 햇볕도 가릴 수 없고...' 혼잣말을 하는 정원사의 파리한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피어 올랐습니다. 정원사는 그날부터 온 마음을 들여 꽃씨를 가꾸었습니다. 꽃씨는 정원사의 마음 속에서 움트고 밝게 자라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왕궁을 거닐던 왕이 감옥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무심코 감옥을 바라보던 왕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아니, 저건 무슨 꽃이야!" 감옥의 창틀 위에 샛노란 민들레 한 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마치 별이 반짝이는 것 같았습니다. 문득 왕의 생각 속에 어린 왕자 시절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철없던 왕자 시절 갈라진 돌 틈에 뿌리 내린 민들레꽃을 보고 가슴이 떨렸던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입니다. 그때 왕자의 스승이었던 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게 바로 생명입니다. 천하보다 귀하지요." "저 생명은 누가 주고 키우나요?" "햇볕과 비와 바람...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절대자이시지요." 왕의 귀에 스승의 음성이 여운을 남기며 생생하게 들렸습니다. '햇볕과 비와 바람... 그 모든 것을 주관하는 절대자이시지요.' 그러다가 갑자기 스승의 얼굴이 정원사의 얼굴로 바뀌었습니다. 순간 왕의 마음에 3년 전에 감옥에 보낸 정원사가 떠올랐습니다. 왕은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꽃 한 송이조차 오직 자기 덕에 피는 줄 알고 살았던 지난 날이 부끄러웠습니다. 한편으론 진리를 깨우쳐준 정원사가 고마웠습니다. "어서 감옥의 문을 열어라. 어서!" 급작스런 왕의 명령에 놀란 신하들이 갈팡질팡했습니다. 곧 정원사가 풀려났고, 왕은 정원사를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자네는 내 자신에게 갇혀 있던 나를 풀어주었네. 자네는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나는 내 자신에게 오랫동안 갇혀 있었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수고가 진정 자신을 위해 주지는 못합니다. 실제 우리를 위해 주는 것 중의 하나는 태양입니다. 태양의 따사로운 기운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줍니다. 하나님은 그 태양을 우리를 위해 넷째날에 만드셨습니다. 태양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는 마음의 표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양 외에도 수많은 피조물을 만드셔서 그 마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 아래 살면서도 헛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요?
3.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
"처음 가는 길이니 꼭 좀 알려주세요." "염려 놓으십시오. 저는 여러번 다녀서 잘 압니다." "예. 그럼 아저씨만 믿겠어요."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넓고 넓은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가 있었습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중앙을 통과하는 이 열차를 많은 사람이 이용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갓난 아기를 안고 한 여인이 열차를 탔습니다. 북다코다 지방으로 가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앳딘 얼굴과 달리 매우 긴장해 있었습니다. 먼 여행을 생각하면 한숨 잘만도 한데 아기를 꼭 껴안고는 뭔가 모를 불안한 표정으로 창밖을 자주 살폈습니다. 열차에 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여인은 평안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열차를 탔고, 또 가야할 곳도 초행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여인은 모험과도 같이 기차를 타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피로 속에서도 쉬지를 못했습니다. 기차는 눈보라 속을 뚫고 계속 달렸고, 끝 없는 평원을 질주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인의 신경은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출발한 곳에서 멀어질수록 내려야할 곳이 가까워졌기에 여인은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침 통로로 승무원 한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여인은 구원자를 만난 듯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는 처음으로 기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내려야 할 곳도 초행길이라 잘 모릅니다. 혹시 아시면 미리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인의 사정을 들은 승무원은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그곳은 사람이 많이 살지 않고 외진 곳이라 잠시 멈추는 곳입니다. 그렇기에 정신을 못 차리면 그냥 지나칠 수가 있죠. 그렇게 되면 한참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곳 정류장이 가까워지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승무원은 그렇게 이야기하곤 곧 떠났습니다. 여인은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잠을 청할 수 없었습니다. '혹시 승무원이 잊으면 어떻게 하지?' 승무원에 대해 의심이 생기자 여인은 다시 불안해졌습니다. 그때 손수레에 간식거리를 파는 종업원이 지나갔습니다. 여인은 종업원에게 다시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종업원은 굉장히 확신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습니다. "아 그곳이요? 그곳이라면 제가 잘 압니다. 꼭 내릴 때가 되면 알려주겠습니다." 여인은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종업원의 이야기를 듣고는 비로소 긴장을 풀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니 꼭 좀 알려주세요." "염려 놓으십시오. 저는 여러번 다녀서 잘 압니다." "예. 그럼 아저씨만 믿겠어요." 긴장이 풀리자 갑자기 피로가 엄습해왔습니다. 여인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렀습니다. 갑자기 기차가 덜컹하면서 섰습니다. 여인은 누군가가 자기를 흔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을 떠서 보니 종업원이었습니다. "아주머니 어서 내리세요. 다 왔습니다.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어서 내리십시오." 자신이 내려야할 곳에 도착했다는 이야기 소리에 여인은 급히 짐을 챙겨서 아이와 함께 내렸습니다. 밖은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 치는 추운 날씨였기에 여인은 옷깃을 단단히 여민 채 창가에 서서 종업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여인이 내린 후 곧 기차가 다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30여분 정도가 흘렀습니다. 종업원은 여인이 앉아 있던 곳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승무원을 발견했습니다. "누구를 찾습니까? 왜 그렇게 두리번거리죠?" "혹시 여기 앉아 있던 아주머니 못 보았소?" "아 갓난 아이를 데리고 있던 아주머니요? 그분은 아까 내렸는데요." 종업원의 대답에 승무원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뭐라고? 그곳은 정류장이 아니오. 넓은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에게 필요한 급유을 제공해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오! 그곳은 인가도 없는 허허벌판이란 말이오!" 그제서야 종업원은 자신이 잘못 알려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음 정류장에서 급히 구조대가 결성되었습니다. 하지만 무릎까지 덮인 눈을 헤치며 구조대가 여인을 찾았을 때는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아기도 엄마 품에 안겨 죽어 있었습니다. 사람들마다 나름대로의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부와 권력, 사람들의 말, 자기 생각 등 자신을 위해 필요하다면 마음을 내주고 거기에 믿음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입니다. 얼마나 잘 믿고 있는 것보다 믿고 있는 대상이 얼마나 진실하냐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살얼음을 확신 있게 걷는다고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두꺼운 얼음을 불안하게 걷는다고 빠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믿어야 될 참된 대상은 무엇입니까?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우리를 진정으로 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2. 이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문을 닫아, 어서 문을 닫아!" 오래 전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평화롭게 지내던 사마리아 성에 어느 날 아람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번쩍이는 투구, 날카로운 칼과 창, 햇볕에 그을린 군인들의 거친 피부, 땅을 뒤흔드는 병거들의 바퀴 소리... 삽시간에 공포가 그 땅을 뒤덮었고, 백성들의 마음이 물녹듯 녹아내렸습니다. 곧 왕궁에서 대책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간곡한 왕의 음성이었지만 모두들 잠잠했습니다. 잠시 후 확신에 찬 한 마디가 침묵을 깼습니다. "문을 닫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두가 입을 연 사람을 주목했습니다. 왕이 의지해오던 장관이었습니다. "성문을 닫는다는 말이오?" "예. 성문을 굳게 닫고 버티는 것입니다." "군대가 물러날 때까지?" "예. 그렇습니다.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곧 장관의 의견이 선택되었고, 문을 닫으라는 왕명이 떨어졌습니다. 이내 육중한 성문이 굳게 닫혔습니다. 그때부터 아무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들어올 수도 없었습니다. 안과 밖이 서로 단절된 것입니다.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이제 성 안의 음식만으로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무 문제가 없는듯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성 안에 비축된 식량이 줄어들었고, 성 안의 음식이 점점 귀해졌습니다. 합분태, 나귀머리 등 전에는 아무 가치 없던 것들이 성문을 닫고 있는 동안 귀한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여러 날이 지나면서 백성들은 굶주림에 고통해야 했고, 하나 둘 배를 움켜쥔 채 죽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을 거닐던 왕의 눈에 두 여인이 비취었습니다. 여인들은 한 아이를 놓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안돼! 이 아이는 내 아이야!" "무슨 소리! 어제 내 아이를 삶아먹은 것을 잊었어?"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배고픔을 이기지 못한 두 여인이 자기 아이를 서로 잡아먹기로 한 것입니다. 그 사실을 발견한 왕은 옷을 찢으며 괴로워했습니다. 성을 지키기 위해 문을 닫았지만 그로 인한 고통과 피해가 너무나 컸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왔습니다. "내일 이맘 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그것은 양식이 풍성해진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을 지켜온 방법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곧 장관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그때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굶주리고 있었고, 곧 죽을 위치에 있었습니다. 문둥이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지라도 성중은 주리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지라." 문둥이들은 자기들의 방법 안에서 살길을 찾지 못하자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담스럽고 두렵기도 했지만 성문을 굳게 닫은 사마리아 성 곁에 있어서는 결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우친 것입니다. 그들은 아람 군대를 향해 발을 내디뎠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것은 자기 생각과 자기 방법을 떠나는 걸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발걸음에 역사했습니다. 큰 군대의 소리를 내게 하신 것입니다. 아람 군대는 깜짝 놀라 급히 도망쳤습니다.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이미 적은 없었고, 금은보화와 풍성한 양식만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문둥이들은 정신없이 배를 채웠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감추었습니다. 그러다가 서로 말했습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힘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얼굴 역시 밝았고, 그들의 마음은 더욱 뜨거웠습니다. "문을 열어요. 어서 문을 여세요!" 확신에 찬 그들의 목소리는 오랫동안 굳게 닫힌 성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의 마음부터 열었습니다. 문지기는 곧 왕궁에 그 사실을 알렸고, 의심하던 왕과 신복들은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문둥이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성 밖에 양식이 풍성하다는 소식이 들려지자 성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곧 성 안에서 굶주림에 허덕이던 백성들이 뛰쳐나갔습니다. 그때 성문을 막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식을 얻고자 달려가던 백성들의 마음을 막을 수 없었고, 오히려 그 발길에 밟혀죽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 150:6)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호흡을 합니다. 호흡은 밖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안에서 생기는 나쁜 공기를 뱉어내는 일입니다. 호흡이 막히면 어떤 생명도 유지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생명도 그러합니다. 내 마음을 뱉어내고 주님의 마음을 얻는 영적 호흡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지키려는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마음을 닫고 있을수록 모든 것을 잃어갔습니다. 주님은 그런 우리들을 향해 간곡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 음성이 당신에게는 들리지 않습니까?
1. 별을 바라보는 사람들
“어이 저기를 바라봐! 저기 빛나는 저 별 말이야!” 여기 이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아래에서 위로, 땅에서 하늘로... 그들의 눈은 늘 하늘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하늘을 잘 알았고, 밤 하늘의 총총히 박힌 별도 다 헤아렸습니다. 2천년 전 구세주의 별은 그들의 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바로 동방의 박사들... “뭐라고? 유대인의 왕이 나셨다고?” 여기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교만한 그의 눈은 언제나 땅을 향해 있었습니다. 천하를 호령하고 뭇 백성을 다스리면서 그는 세상과 욕망에 밝았습니다. 하지만 하늘에 대해서는 너무 어두웠기에, 자신의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헤롯이었습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오랜 옛적부터 사람들을 주목시킨 것은 땅이었습니다. 땅의 소산을 자랑스럽게 여긴 가인처럼, 숱한 사람들이 땅에 소망을 두고 땅을 갈았고 수고의 땀을 땅에 흘리며 땅에서 나는 것을 먹고 땅에서 숨쉬다가 땅에서 죽어 갔습니다. 그리고 땅에 묻혔습니다. 그렇게 땅에서 태어난 수많은 육체들은 모두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요? 사랑과 우정, 기쁨과 만족, 행복과 환희를 맛보게 해주었던 영혼은 어디서 쉬고 있을까요? 오래 전 뉴욕의 할렘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뉴욕... 그 그늘 아래 흑인들이 어둡게 살고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그 유명한 할렘가였습니다. 백인들 대부분이 가기를 꺼려하는 그곳에 어느 날 백의의 천사처럼 한 여인이 들어갔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하던 그 여인의 눈에 고개 숙여 울고 있던 작은 흑인 소년이 비취었습니다. “애야 왜 그렇게 울고 있니?”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에 소년은 눈을 들었고 곧 한쪽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습니다. 소년이 가르킨 곳에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어우러져 놀고 있었습니다. “너는 왜 저 아이들과 같이 놀지 않니?” 더욱 궁금해진 여인의 질문에 소년은 말없이 자기 다리를 보여주었습니다. 소아마비였습니다. 걸을 수 없었기에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걷지 못하는 아이의 다리 앞에서 그 여인은 도저히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여인은 깊이 생각하더니 아이의 다리를 치료해줄 사람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여인의 애틋한 정성 탓인지 한 유명한 소아마비 의사가 도와주겠다고 나섰습니다. 그것도 한 푼도 받지 않고... 결국 기적적으로 소년의 다리는 회복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아이들처럼 뛰놀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려 뛰노는 소년의 모습에 여인과 의사도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한 해 두 해... 10년이 지났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뉴욕의 한 겨울밤... 추운 바람에 모두들 코트 깃을 치켜 세우고 바쁜 걸음을 걷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두 사람이 마주쳤는데 서로 알아보고는 매우 반가워했습니다. 그때의 그 여인과 의사였습니다. 두 사람은 곧 가까운 커피숍으로 갔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곧 자연스럽게 소년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히리안은 지금 어디 있죠?” 소년의 이름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의사 앞에서 여인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이제 다 컷을텐데 혹시 의사가 되었나요?” 여인이 더욱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럼 혹시 교사가 되지는 않았나요?” 여인의 고개가 힘없이 좌우로 흔들렸습니다. “그럼 회사에 다니나요?” 여인은 더이상 숨길 수 없었던지 무겁게 입을 열었습니다. “선생님... 그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놀라는 의사의 얼굴을 조용히 주목하며 여인의 말은 이어졌습니다. “선생님 히리안은 그 동안 불량아이들과 어울려 강도짓을 해왔습니다. 얼마전에는 사람까지 죽여서 그만...” 잠시 침묵이 흘렀고, 여인은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는 사라졌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히리안의 다리만 낫게 해 주었지 그 다리로 어디로 걸어가야 되는지는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건강한 다리보다 어느 길로 가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육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땅의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늘의 일입니다. 땅에 주목하고 살아가는 헤롯이 되겠습니까? 별을 바라보고 사는 동방박사들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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